가끔 직업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는다. 주로 처음 방문한 미장원에서 무념무상의 상태로 머리칼을 맡기고 있을 때다. 소설가라고 대답해본 적은 없다. 대충, 프리랜서라 답한다. 더 물으면 글 쓰는 쪽이라 어물쩍 넘어간다. 언젠가 동료소설가들 사이에서 이 이야기가 나왔을 때 비슷한 상황에서 다들 비슷한 대응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누군가는, 컴퓨터로 작업하는 일이라 답한다고도 했다. 어쨌든 거짓말은 아니니까. 한바탕 웃기는 했지만 지워지지 않는 의문이 남았다. 우리는 왜 그러는 걸까.
국어사전에서 ‘직업’이라는 명사를 찾아보았다. ‘개인이 사회에서 생활을 영위하고 수입을 얻을 목적으로 한 가지 일에 종사하는 지속적인 사회활동’이라고 되어 있었다. 그제야 내가 소설 쓰는 일을 직업이라고 떠들고 다니지 못하는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전업 작가로서 소설로 생활을 영위하고 수입을 얻는 것이 마땅하다 여기지만 뜻대로 안 되어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예술가에 대한 처우 개선 문제는 일단 논외로 하고)많은 소설가는 그에 상관없이 계속 소설을 쓴다. 생계를 위한 다른 일을 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세상엔 이렇게 생겨 먹은 사람들도 있는 것이다. 어떤 일은 ‘업’일지언정 사전적 의미의 ‘직업’과는 다르다.
얼마 전 아이들을 데리고 어린이 직업 체험 테마파크를 방문한 뒤 현대인에게 직업이란 과연 무엇인가 하는 문제 앞에서 한층 더 혼란스러워졌다. 처음 가 본 직업 체험 테마파크는 별천지 같았다. 대기업 브랜드의 로고가 즐비했고 각 업장들은 실제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업장의 축소판이자 복제판이었다. 현실의 세계와 유사한 것이 그 뿐만은 아니었다. 인기 있는 직업과 인기 없는 직업이 명확히 나뉘었고, 원하는 직업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일단 주위의 눈치를 봐야 했다. 그리고 남들 보다 먼저 뛰어가 줄을 서야 했다. 일단 대기석에 들어서고 나면 중복 지원은 불가능하다. 몇십 분 이상 아이는 직접 꼼짝 않고 차례를 기다려야만 했다.
무엇보다 나를 어리둥절하게 한 것은 체험을 기다리는 어린이들의 태도였다. 대기석의 거의 모든 아이들이, 평소와 다른 지극히 얌전한 자세로 줄지어 앉아 조교의 말을 따랐다. 왜인지는 곧 알게 되었다. 한 아이가 못 참고 화장실에 다녀 온 사이 다른 아이가 그 자리에 냉큼 앉았기 때문이다. 부모끼리 언쟁을 벌이는 모습을 아이들이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빼앗기지 않으려면 무슨 일이 있어도 시스템이 정해둔 대로 해야 한다는 사실을, 한 번 맡은 자리는 제가 악착 같이 지켜야 한다는 사실을 아이는 자연스레 습득하게 될 것이다. 시스템은 개인을 배려하거나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냉혹한 진실을.
자기 아이가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대형마트 계산원 체험을 하는 광경을 보면서 비정규직 마트 노동자들의 투쟁을 다룬 영화 ‘카트’를 떠올리는 부모가 있을까. 부지불식간에 떠올렸다가도 이내 고개를 흔들 것이다. 체험장 내에서는 통용되는 가상화폐도 있어 땀 흘려 모아 인기 있는 체험장에 내야하고 상품도 구매할 수 있다. 몇 가지 체험을 하자 화폐가 떨어져갔다. ‘어린이들이 현실세계의 직업을 체험하며 진짜 어른이 되어 볼 수 있다’는 그곳의 홍보 문구를 천천히 곱씹어보았다.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체험이고 무엇이 진짜 어른인가.
세상이 바뀌었다고들 한다. 완전고용은 보장되지 않고 원하는 직업은커녕 직업 자체를 가지기가 어려워진 시대다. 이런 때에 직업의 의미란 무엇인지 함께 찾아보자고 말하는 것은 사치스럽게 느껴질지 모른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직업 속에서 길을 잃지 말아야 한다. 직업 속에서 내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더 단단해져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미래의 직업에 관해 우리 아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교육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할 적기다.
정이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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