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청 방문 한국 주교단에 연설
“여러분이 고국에 돌아가면 섬김 받는 사람이 아니라 섬기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런 섬김의 정신 속에서 다른 사람들을 배려할 수 있게 되고, 한국 교회가 성장하는데 보탬이 될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2일 교황청을 정기방문 중인 한국 주교단 등과 만나 연설하는 중 주교직은 평생을 봉사하는 자리라며 이같이 말했다고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측이 전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연설에서 “여러분이 (바티칸에)오니까 기쁨과 슬픔을 기꺼이 함께 나누며 환대해준 한국 국민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면서 “한국 방문에 대한 기억은 앞으로 활동하는 데 있어 끊임없는 격려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 방문 기간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를 시복한 것이 가장 아름다운 순간의 하나였다”며 “그들은 우리로 하여금 더욱 희생하고 자비를 베풀도록 하는 좋은 본보기를 제공했으며 그들의 가르침은 개인은 소외되고 사회관계는 더욱 약화한 오늘날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교황은 또 “한국에서 젊은이들과 함께하며 그들의 열린 마음을 경험한 것은 큰 즐거움이었다”며 “젊은이들은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믿음을 공유할 것을 요구하고 우리의 신앙과 진실성을 시험하기도 하지만 그들의 그런 정직성은 거꾸로 우리가 그들의 생활에 믿음을 증거하는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어 “가난하고 외롭고 힘든 사람을 섬기는 성스럽고 검소한 교회를 만드는 과정에서 젊은이들을 여러분이 섬겨야 하는 협력자로 두기 바란다”며 “젊은이들과 가까워지는 것은 교회를 강화하는 것은 물론 그들과 그들의 가족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경험하는 여러 어려움을 이해할 수 있게 해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앞서 이날 한국 주교 12명을 따로 만난 자리에서도 “사제들이 안락함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고 신자 위에 군림하려는 경향도 있다”며 “교회에서 (직위가)올라간다는 것은 내려간다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고 겸손한 사제의 자세를 거듭 환기시켰다.
주교회의 의장인 김희중 대주교는 이 자리에서 “세속화와 물질주의의 확산으로 한국 교회 구성원이 중산층으로 변하면서 다양한 문제들이 드러나고 있다”며 가난한 이들에 대한 관심이 줄고 성직자와 수도자들이 세속화ㆍ관료화되고 있으며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고 신자들의 성사 생활과 신앙 의식이 쇠퇴하고 있다고 교황에 보고했다.
김 대주교는 또 “교황 방한 이후 한국 교회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를 두고 고민했다”면서 “결론은 복음으로 돌아가 저희(주교들)가 먼저 ‘복음의 기쁨’을 살면서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 즉 고통 받는 이들과 연대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수입 일부를 모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눔을 실천하는 ‘착한 사마리아인 통장’을 개설하기로 했으며 교회 안에서는 사제들과 교우들이 공감하고 소통하는 복음적 리더십을 회복하고 흔들리는 한국 가정 교회를 바로 세우고자 힘을 모으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 자리에서 한국 주교들에게서 올해가 남북분단 70주년이라는 말을 전해 듣고 “남한과 북한은 같은 언어를 쓰는 한민족”이라며 “순교자의 피는 남한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피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고 말했다고 주교회의는 전했다.
교황과 한국 주교단의 만남은 17일까지 계속되는 주교들의 교황청 정기 방문 행사 중 하나로 진행됐다. 교황은 앞서 9일 한국 주교단 26명 중 14명을 먼저 만난 데 이어 이날 12명을 따로 만났고 이후 다시 전체 주교단을 상대로 연설했다. 교회법에 따라 모든 교구의 주교들은 5년마다 교황청을 공식 방문해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의 묘소를 참배하고 세계 주교단의 단장인 교황에게 지역 교회의 현황을 보고한다.
교황은 9일 한국 주교들을 만난 자리에서 첫 질문으로 “세월호 문제가 어떻게 됐느냐”고 해 화제를 모았다. 주교단은 그 질문에 무엇이라고 답했는지 공개하지 않았다. 교황은 지난해 방한 당시 광화문광장에서 단식농성 중이던 김영오씨를 만나 편지를 받는 등 네 차례나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의 상처에 공감하고 이들을 보듬었다. 한국을 떠날 때에도 주변에서 “정치적 중립을 위해 노란 리본을 떼는 게 좋겠다”는 말이 있었지만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는 없다”고 말했다.
김혜영기자 shi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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