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경화는 감성과 상상력 부족한 탓"
“인간의 감수성을 단련하면서 얻게 된 새로운 인식으로 새 문화를 창조해내지 못하면 인류는 파멸하고 말 겁니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오에 겐자부로(80ㆍ大江健三郞)는 “인간의 감성과 치유 능력에 대해 통찰력을 제시해 줄 평화주의자”라고 소개 받으며 12일 서울 연세대 백양콘서트홀에서 열린 ‘연세-김대중 세계미래포럼’ 강연자로 나서서 인류의 미래에 대해 이렇게 경고했다.
오에는 인간의 감성을 사회의 다양한 측면을 이해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아이 때 풍부하던 감성이 성인이 되어 갈수록 지성이나 이성보다 못한 것으로 여겨진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감성이 상상력과 결부돼야 미래에 인류가 생존하는 데 필요한 행동 지침을 이끌어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오에는 상상력은 부여된 기존의 이미지를 단순히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주어진 이미지를 자신 내부에서 변형시켜 독특한 것으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프랑스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를 인용해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선 젊은이들이 기성 세대로부터 주어진 이미지를 답습하지 말고 감성과 상상력을 발휘해 자신들만의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 평화헌법 지키기 운동과 원전 반대 캠페인에 앞장 서는 대표적인 진보 지식인 오에는 일본 사회의 우경화 등 실태를 이 감성의 문제와 결부시켜 파고 들었다. 우선 아베 총리를 비롯해 우경화하는 일본 지식인을 향해 감성과 상상력이 부족하다고 질타했다. 그는 “아베 총리는 제2차 세계대전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라며 “일본이 가장 떠올리기 싫은, 가장 부끄러워하는 시대인 패전 후 10년 최악의 시대를 부정하고 일본의 전후 세대가 새 출발을 위해 고민했던 것들을 다 뒤집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일본이 과거 전쟁을 일으켜 세계에 큰 피해를 주었다는 감성을 더욱 새롭게 하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잘못된 이미지들은 상상력을 발휘해 타파한 후에야 새로운 일본의 미래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우경화에 대한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를 무시하는 아베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지 않고 있는 일본의 현 상황에도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우려했다.
오에는 최근 일본을 방문해 과거사, 원전 문제 등을 점잖게 비판하고 떠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를 거론하며 “‘새로 태어난다’는 뜻의 ‘르네상스’처럼 지금이야말로 이걸 바꿔야 한다는 인식을 갖고 국제적으로 어떻게 책임져야 할지, 과거사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에는 특히 “일본이 한국민들에게 과거에 얼마나 큰 범죄를 저질렀는지에 대해 충분히 사죄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오에는 앞서 3ㆍ11 일본 대지진 4주년을 하루 앞둔 10일 도쿄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도 메르켈 총리와 비교하며 “한번 더 원전 사고가 일어나면 일본은 현재도 미래도 사라진다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확산되었는데도 일본의 정치인은 다른 방향으로 재출발할 의사가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그것은 센카쿠제도의 문제에서도, 다케시마 문제에서도 마찬가지”라며 “아시아 각국과 관계가 매우 나쁜 상태라는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일본)정부는 그것을 개선하겠다는 의사가 있는 것 같지 않고 그를 위한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오에는 13일에는 최근 국내 번역돼 나온 자신의 소설 ‘익사’(문학동네 발행)를 소개하는 기자회견도 갖는다.
안아람기자 onesh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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