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직속 통일준비위원회(통준위)가 뜬금없이 ‘흡수통일 연구’ 논란에 휩싸였다. 정종욱 민간부위원장이 10일 한 강연회에서 정부와 통준위 내에 흡수통일을 연구하는 팀이 있다고 발언한 것으로 일부 언론이 보도한 게 발단이다. 파문이 일자 정 부위원장은 물론 청와대까지 나서 사실이 아니라고 강력 부인했다. 정 부위원장은 어제도 “통준위 활동을 소개하는 과정에서 용어선택이 적절치 못해 보도가 잘못됐다”며 거듭 유감을 표했다.
하지만 파장이 쉽게 가라앉을 것 같지는 않다. ‘흡수통일’ 용어 자체가 갖는 민감성 때문이다. 대화와 합의를 통한 평화통일을 추구한다는 게 정부의 공식입장이고, 통준위의 존재근거 또한 이것이다. 하지만 북한은 통준위를 자유민주주의체제하의 통일을 준비하는 ‘체제통일 전위대’로 치부하고 비난해왔다. 정 부위원장의 발언은 통준위 활동에 대한 북측의 반발을 한층 부추길 게 뻔하다. 이렇게 되면 쓸데없는 빌미가 돼 가뜩이나 경색된 남북관계를 더더욱 꼬이게 할 우려가 크다.
물론 북 체제의 미래를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만큼, 우리로서는 여러 상황에 대비해야 함이 당연하다. 하지만 공공연하게 체제붕괴를 거론하면서 그렇지 않아도 불신 가득 찬 북 정권과 대화와 통일을 얘기하기는 어렵다. 광복과 분단 70주년을 맞아 통준위가 제안한 다양한 공동사업도 무의미해진다. 이런 사정을 감안한다면 정 부위원장은 참석자가 제한된 강연회 자리라도 보다 신중했어야 했다.
통일은 물론이고 당장의 남북관계 회복을 위해서도 북한을 대화의 자리로 이끌어 내는 게 시급하다. 여기에 피차 상대에 대한 최소한의 신뢰가 필요함은 말할 것도 없다. 끝없이 긴장을 고조시키는 북측도 그렇지만 대화하자고 하면서도 한편으로 북측의 체제불안을 증폭시키는 우리정부의 혼란된 신호도 문제가 많다. 이번 통준위 정 부위원장의 발언소동을 미숙하고 혼란스러운 정부의 대북자세를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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