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청탁 시점 달라 대가성 없다"
'사랑'이라도 김영란법 적용 땐 유죄
내연남으로부터 사건 청탁과 함께 벤츠 승용차 등을 제공받은 혐의로 기소된 ‘벤츠 여검사’ 사건의 이모(40) 전 검사가 12일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직무관련성이나 대가성 입증과 관계 없이 공직자가 일정 액수 이상을 받으면 처벌하도록 한 ‘김영란 법’의 필요성을 보여주는 사례라는 지적이다.
이 전 검사는 2010년 광주지검 재직 중 자신과 내연관계를 맺고 있던 최모(49) 변호사가 고소한 사건을 사법연수원 동기인 창원지검 검사에게 전화로 청탁한 대가로 같은 해 9월부터 2011년 5월까지 벤츠 승용차 리스료와 샤넬 핸드백 등 5,591만원 상당의 금품을 받은 혐의(알선수재)로 구속기소됐다.
1심은 “피고인이 내연관계인 최 변호사의 사건과 관련, 동료 검사에게 전화로 청탁을 한 기간에 (최 변호사로부터 받아 쓴) 법인카드의 사용액이 크게 늘었고 벤츠를 이용한 점 등을 볼 때 유죄가 인정된다”며 이 전 검사에게 징역 3년에 추징금 4,400여 만원, 샤넬 핸드백 및 의류 몰수를 선고했다.
그러나 2심은 “피고인이 최 변호사로부터 고소사건을 청탁받은 시점은 2010년 9월 초순인데 벤츠 승용차를 받은 때는 2년7개월 전인 2008년 2월인 것으로 볼 때 청탁 대가로 차를 받았다고는 볼 수 없다. 피고인은 여자관계가 복잡한 최 변호사에게 다른 여자를 만나지 않겠다는 ‘사랑의 정표’를 요구해 벤츠 승용차를 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원심을 뒤집고 이 전 검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도 “피고인이 신용카드 및 벤츠 승용차를 교부받은 시기와 청탁 시점 사이의 시간적 간격이 존재하는 점, 피고인과 최 변호사의 관계 및 청탁을 전후한 시점의 카드사용액 등 내연관계에 기한 경제적 지원에 별다른 차이가 없는 점 등을 종합하면, 피고인이 받은 청탁과 수수 이익 사이에 대가관계가 없다고 판단한 원심의 결론은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지난 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김영란 법(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법)’은 공직자 등이 1회 100만원, 1년에 300만원을 초과하는 금품을 수수한 경우 직무 관련성과 대가성이 없더라도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때문에 1년 6개월 뒤 시행되는 이 법이 일찍 시행됐더라면 이 전 검사는 유죄 판결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김영란법에는 ‘사교의 목적으로 제공하는 선물의 경우 대통령령이 정한 금액 이하라면 처벌하지 않도록 한다’는 규정이 있어 이 법이 시행되더라도 이 전 검사가 ‘사랑의 정표’였다고 항변할 경우 처벌이 어렵지 않았겠느냐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대통령령으로 정하게 될 금액의 기준은 수만원 수준이 될 전망이어서 수천만원대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기소된 이 전 검사의 경우 빠져나갈 구멍은 없다는 게 중론이다.
그러나 이 전 검사는 이미 무죄 확정판결을 받았기 때문에 김영란 법이 시행되고 사건이 공소시효 내에 있더라도 다시 기소돼 처벌받거나 소급적용을 받을 가능성은 없다. 형법은 제정 이후 벌어진 사건에 대해서만 적용하는 것이 일반원칙이며, 김영란 법을 전자발찌법(특정 범죄자에 대한 위치추적 전자장치부착법)과 같이 소급적용 조항을 두는 법으로 개정할 특별한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서보학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은 “이 전 검사가 아무리 최 변호사와 애인 관계에 있었다고 해도, ‘검사 지위에 있지 않았다면 벤츠를 사주고 했겠나’라고 보는 게 일반 국민의 상식이고 법감정”이라며 “이번 판결은 알선수재죄든 수뢰죄든 직무관련성이나 대가성 입증을 엄격하게 요구하다 보니 공직자가 부정을 저지르고도 법망을 빠져나갈 수 있게 하는 우리 법체계의 공백을 메우기 위한 ‘김영란 법’의 필요성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김청환기자 ch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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