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벨기에 루벤(Leuven)이라는 곳에 가게 되었다. 브뤼셀에서 차로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 곳에 위치한 루벤은 유학생들이 많은 대학도시로 알려져 있다. 나에게도 생소한 이 도시를 방문한 이유는 동료들과 함께 활동하고 있는 미술가 그룹 ‘옥인 콜렉티브’의 작업이 이곳의 스툭(STUK) 아트센터가 주관하는 아티팩트(ARTEFACT) 페스티벌에 초대 받았기 때문이다. 아티팩트 페스티벌은 예술뿐 아니라 문화, 시사, 과학 등의 다학제적 연구를 바탕으로 열리는 연례 예술 축제인데 그 해에 제시된 주제와 연관된 전시, 강연, 공연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스툭의 전통과 성격상 아티팩트 페스티벌은 유럽 중심이긴 하지만 세계 각국에서 다양한 예술적 실천을 하고 있는 작가들을 초청해서 작품을 전시하고 교류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는 역할을 수행해왔다고 한다.
2015년 페스티벌의 제목이자 주제는 ‘당신의 삶을 바꿔야만 한다(You Must Change Your Life)’로 이는 독일 철학자인 피터 슬로터다이크의 동명의 책에서 빌려온 것이다. 사실 이 문장만을 떼어내 보면 너의 삶을 다 바꿔야만 한다는 강한 어조에서 공감 이전에 피로감을, 예술이 뭘 제대로 바꿀 수 없을 것만 같은 부채감을 동반하기도 한다.
슬로터다이크에 대해서는 ‘냉소적 이성 비판’의 얼개 정도 밖에 알지 못하지만 ‘오직 자신의 유머에만 웃는 것이 권력의 본질이다’라는 명쾌한 문장은 기억한다. 마르크스의 이데올로기가 ‘대중들은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행한다’는 것이라면 슬로터다이크는 ‘자신이 하는 일을 잘 알고 있지만 여전히 그렇게 행한다’는 쪽이다. 냉소주의적 주체는 현실에 대한 전망이 이미 왜곡돼 있는 것, 그리고 그러한 왜곡된 전망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수용하고 되레 그것에 집착한다. 그는 이를 돌파하기 위한 주된 방법으로 연습을 통해서 몸을 바꾸는 면역력을 기르고 자신의 주어진 한계를 초월하는 부단한 수행을 제시한다. 한편 미국의 신경과학자인 이스라엘 로젠필드의 DNA와 뇌에 대한 연구도 전시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서구 미술의 역사에서 아카데미가 아카데미주의로 전락하고 아방가르드가 찾은 교육의 기반은 자연 속에서 만물의 보편적 척도인 인간의 모습을 변화시키는 것이었다. 관찰의 대상이었던 인간의 모습이 사라진 자리에 내면의 원리를 지닌 인간이 들어섰으며 해부학에 대한 관심은 심리학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또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이곳에서는 몸과 뇌, 감각의 급진적인 변화를 꾀한다. 그곳이 비록 전시장일지라도.
전시된 옥인 콜렉티브의 영상작업은 ‘작전명’ 연작 중 “작전명-까맣고 뜨거운 것을 위하여”(2012)였다. 이것은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태에서 언론 봉쇄가 지시되고 그로 인해 시민들의 피해가 극대화된 사건을 상기시키며, 국가로부터 어떠한 보호도 받지 못하는 순간에 대비해 스스로를 방어하도록 훈련하는 ‘유사(헛)-기 체조’이다. 기계음의 내레이션을 따라 세 명의 수련생들은 형식적으로 배포된 재난 대피 훈련 목록의 허술함을 혹독하게 풍자하고, 동시에 생면부지의 타인과 눈을 맞추며 손을 잡아야 하는 상황을 유머러스하게 체득하도록 유도한다. 냉소주의가 아니길 바라지만 이 작업을 할 때의 감정에서는 냉소 또한 배제할 수 없는 동력이기도 했다.
유럽의 위기와 변화를 바라는 그들의 절실함에 대한 인상을 뒤로 하고 정작 나를 더 놀라게 한 것은 한국으로 돌아와서 스툭으로부터 전시 자료에 대한 이메일을 받았을 때였다. 메일에는 원본 크기의 사진 파일과 그 사진의 절반 크기, 4분의 1 크기, 웹에서 쓰는 용도, 그 중에서 자신들의 기준에서 선별한 것들, 계약서와 텍스트의 pdf 파일들이 폴더 별로 착착 정리된 링크가 들어있었다.
우리는 무엇부터 변해야 할까나. 뒤통수가 얼얼하다.
이정민 미술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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