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들이 신분을 공개하지 말아 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황우여 교육부장관은 지난달 11일 국회 업무보고에서 도종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문ㆍ이과 통합 교육과정을 위한 교육과정 시안 개발연구 중 역사과 개발연구진(17명)만 명단이 공개되지 않았다는 지적에 이 같이 답했다. 도 의원이 다시 “수학과와 과학과의 개발연구진 명단은 제출했으면서 왜 역사과는 제출하지 않느냐”며 명단을 요구하자 황 장관은 “본인들의 원하지 않았고 공정한 연구수행을 위해서…”라고 눙쳤다. 한달이 흐른 11일 현재까지 교육부는 여전히 명단을 제출하지 않았다.
교육부는 지난달 16일에도 ‘이달의 스승’ 12명을 선정했다는 브리핑에서 선정위원 9명의 명단을 공개하라는 기자들의 주문에 “본인들이 공개를 꺼려한다”는 똑같은 이유를 대며 거부했다. 기자들이 “누가 신뢰를 하겠느냐”고 어르자 교육부는 겨우 위원장의 이름과 약력만 공개했다.
정부가 정책 개발을 위해 ‘모신’ 분들이 능력 없는 이들은 아닐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유독 교육부 관변(官邊) 역사학자들만 신분 공개를 꺼리는 건 이해할 수 없다. 우리 사회에서 근현대사와 관련한 이념논쟁이 심하다는 점이 이유로 짐작되지만 신분을 감출 이유로는 군색하다. 드러내고 싶지 않다면 참여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정작 친일 행적이 드러난 최규동 전 서울대총장을 3월의 스승으로 뽑고 문제가 되자 취소하면서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는 점은 학자적 양심마저 의심케 한다. 역사과 개발진이 정부의 국정교과서 추진에 찬성 일색의 학자들로 구성됐다는 의혹은 그래서 당연해 보인다.
이달의 스승 선정에 참여한 한국교총은 최 전 총장이 일제 관변잡지에 기명 논문으로 일제를 찬양한 행적이 드러나자 “일부 행위를 침소봉대해 삶 전체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에 수긍할 순 없지만 적어도 그가 자의든 강제든 자신을 드러냈다는 점에서는 현 교육부 관변 역사학자들보다 나아 보인다. 교육부도 이들을 숨길수록 정책 신뢰가 흔들린다는 점을 모르진 않을 것이다. 괜히 박근혜 정부의 교육정책 신뢰도가 8.7%(지난달 한국교육개발원 조사 결과)에 불과한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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