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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 투입되는 무상급식·보육부터 비례복지 밑그림을"

입력
2015.03.12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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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계층 되레 복지사각 방치, 남유럽 모델의 실패 반면교사로

수혜 대상 넓히고 혜택은 차등화, 비례복지 국민적 선호 반영 필요

기업 부담 사회보험료 인상 등 우회적 재원 마련 방안 검토할 만

‘수혜 대상은 넓히면서 소득에 따라 혜택은 차등화 하는 식의 정책이 이뤄져야 한다.’

우리나라 국민이 바라는 한국형 복지의 밑그림은 선별복지, 보편복지도 아닌 ‘비례복지’였다. 한국일보와 한국재정학회가 전국 19세 이상 성인 남녀 1,03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세금ㆍ복지 관련 대국민 인식조사’에서 62.7%가 바람직한 복지 정책 방향으로 비례복지를 꼽았다. 복지 전문가들 역시 “선별복지냐, 보편복지냐 하는 소모적인 논쟁을 끝내고, 증세를 통한 비례복지 확대로 현재의 저부담ㆍ저복지 체제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복지사각지대 큰 남유럽 모델 고착화 우려

한국은 대표적인 저부담ㆍ저복지 국가다. 세금을 적게 내고, 복지혜택도 적게 받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65세 이상 노인빈곤율ㆍ자살률ㆍ저출산율은 ‘복지 결핍’의 또 다른 증거다. 선진국의 문턱에 들어섰다는 한국의 현실이 그렇다. 남기철 동덕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현재의 복지 구조에서는 저출산 등 사회문제를 결코 해결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리스, 이탈리아 등 남부 유럽 국가들이 겪는 ‘복지 분리’ 현상이 고착화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복지 혜택이 정규직 남성과 같은 노동시장 핵심 계층에 집중되고, 비정규직ㆍ여성ㆍ노인 등 주변계층은 배제되는 ‘분리된 복지국가’가 한국의 가까운 미래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김연명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높은 실업률ㆍ저출산ㆍ고령화ㆍ강한 가족책임주의ㆍ다수의 비정규직 등 남부 유럽의 경제 상황은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며 “민간 병원ㆍ보육시설의 높은 비중까지 고려한다면 향후 한국의 복지체제는 복지 사각지대가 큰 남부유럽형에 시장의 영향력이 강한 영미 모델이 결합된 혼합형으로 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민간보험 침투율(GDP 대비 총 민간보험료)은 11.6%로 세계 2위 수준이다. 정부가 제공하는 사회보험이 그만큼 부족하다는 것이고, 복지 양극화가 굳어질 가능성 또한 높다는 뜻이다.

조세저항 적은 비례복지

전문가들은 “복지 지출 확대가 불가피하다”고 입을 모았다. 올해 정부의 복지 예산(115조7,000억원)이 사상 처음 전체 예산 대비 30%를 넘겼으나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이다.

복지제도 설계와 예산 집행 방식으로는 비례복지를 꼽았다. 이상은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보편복지와 선별복지를 절충한 비례복지는 납세자와 수혜자 간의 마찰 가능성이 낮아 복지 확대에 따른 반발이 적다”고 했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도 “필요한 사람에게 더 많은 복지 혜택을 주는 비례복지는 국민 다수가 합의할 수 있는 합리적인 자원배분”이라고 말했다.

저소득층에게만 혜택을 주는 선택 복지는 수혜자에게 낙인효과, 납세자에게 조세저항감을 줘 지속가능성이 낮다. 소득과 관계없이 모두에게 일률 제공하는 보편 복지는 “이용하지 않으면 손해”라는 인식에 따라 도덕적 해이를 불러온다.

다만 제도의 목적과 국민 인식에 맞춰 비례 복지를 적용해야 한다는 신중론도 제기됐다. 최영준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는 “국민연금은 내가 낸 만큼 돌려받아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에 현재 방식 그대로 가고, 무상급식ㆍ보육 등 세금이 투입되는 복지 정책 위주로 비례복지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연명 교수는 “월 20만원씩 만 65세 이상 노인들에게 기초연금을 준다고 해서 최저빈곤상태를 벗어나게 하겠다는 본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 비례복지 도입에 앞서 최소보장 수준부터 끌어올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증세 논의 물꼬 터야

문제는 돈이다. 주머니 사정은 그대로인데 더 많은 곳에 돈을 쓸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결국 돈을 아껴 쓰거나, 복지를 포기하거나, 아니면 다른 곳에서 가져와야 한다. 하지만 ‘아랫돌 빼서 윗돌 괴기’처럼 복지 공백을 메울 수 없다. 그만큼 현 정부의 ‘증세 없는 복지’ 공약은 실현가능성이 낮다. 복지 지출을 늘리려면 우선 곳간이 넉넉해야 한다.

남기철 교수는 “증세 논의가 부담스럽다면 기업이 내는 사회보험료 등을 인상하는 우회적인 방법부터 고려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한국은 노동자와 기업이 각각 4.5%씩(국민연금) 부담하지만 핀란드, 스웨덴 등 복지 선진국에서 기업이 내는 비율이 각각 17.7%, 11.4%로 개인(핀란드 5.2%ㆍ스웨덴 7%)보다 높다.

이상은 교수는 “목적세 성격의 ‘사회복지세’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그는 “증세 거부감이 강한 이유는 본인 뜻과 무관하게 세금이 쓰일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인데, 걷힌 세금의 씀씀이를 사회복지에 한정하면 조세저항감을 줄이면서 세수를 확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외에 ▦소득세 최고세율 과표 수정 ▦자영업자의 소득 탈루 감시 강화 ▦복지정책 구조조정 등이 제시됐다.

김연명 교수는 “비례복지는 해외 복지 선진국에서 시행하는 ‘선별적 보편주의’와 같은 개념”이라며 “북유럽 국가들이 재원 확충을 통해 선진 복지 국가로 발돋움한 것처럼 정부도 증세 논의를 통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야 한다”고 말했다.

변태섭기자 liberta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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