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잣집 철없는 금발미녀를 연기한 뒤 스타가 됐다. 출세작 ‘금발이 너무해’(2001)는 곧 족쇄가 됐다. 평범한 외모인데 미녀로 포장됐다는 뒷말이 나왔다. 지적 이미지를 구축하지도 못했다. 배우보다 스타로 여겨졌다. 리즈 위더스푼에 대한 선입견은 꽤 오래갔다.
지난 1월 개봉한 ‘와일드’는 위더스푼에 대한 고정관념을 흔들었다. 정신적 지주였던 어머니를 잃은 뒤 스스로를 망가뜨리던 여자 셰릴은 수천㎞의 걷기에 나선다. 삶의 희망을 되찾기 위해서였다. 발꿈치가 벗겨지고 발톱이 떨어져나가는 고통을 겪으며 셰릴은 진정한 자신을 찾는다. 영화를 보는 내내 ‘못이 되기보다 망치가 되고 싶다’는, 사이먼 앤 가펑클의 오랜 노래 ‘엘 콘도르 파사’의 가사가 심장을 두드렸다. 회한 속에서 살아야 할 이유를 찾아가는 셰릴을 호연한 위더스푼은 박수 받아 마땅하다.
위더스푼에 대한 생각이 바뀐 것은 인상적인 연기 때문이 아니다. 한 여인의 치유에 초점을 맞춘, 상업성 떨어지는 영화는 위더스푼 주연과 제작으로 날개를 달았다. 위더스푼은 원작 도서를 읽은 뒤 제작을 마음 먹었다. 영화에 대한 그의 사랑과 과감한 도전 정신을 가늠할 수 있는 일화다.
할리우드 배우들의 제작 겸업은 흔하다. 알찬 시나리오를 눈여겨보다 직접 제작에 나서는 경우가 많다. 대형 스튜디오들이 거들떠 보지 않을 작은 영화들이 대부분이다. 브래들리 쿠퍼도 최근 ‘아메리칸 스나이퍼’에서 이라크전 참전 군인을 연기했고 제작도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국내 배우들은 영화산업에서 한 몫을 하기보다 빌딩 사기에 몰두하고 있다. 지난주 한 경제신문에서 300억원대 부동산을 보유한 한 한류스타의 재테크를 조명한 기사를 읽으며 감탄과 씁쓸함이 교차했다. 물론 노후를 대비한 재테크에 배우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딴죽을 걸고 싶지 않으나 아쉬움은 있다. 국내 배우들은 영화에서 재테크의 종자돈을 얻지만 다시 그 돈을 영화에 투자하기를 두려워한다. ‘마이 라띠마’(2012)의 유지태와 ‘톱스타’(2013)의 박중훈 정도만이 영화로 번 돈을 영화 만들기에 썼다.
해외 스타들도 재테크를 한다. 다만 돈 불리기에만 전념하지 않는다. 국내 배우들과의 차이다. ‘와일드’는 전세계에서 5,100만달러를 벌었다. 예상을 뛰어넘는 흥행이었다. 위더스푼은 지난달 열린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 후보로 레드카펫을 밟았다. 못이 아닌 망치 같은 배우가 된 셈이다.
wender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