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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학 지젝이 본 '샤를리 에브도' 테러 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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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학 지젝이 본 '샤를리 에브도' 테러 원인

입력
2015.03.11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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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사 테러, 인질모욕, 참수, 화형, 문화재 파괴. 이슬람 근본주의의 행패가 궁극으로 치닫고 있다. 이 “견딜 수 없는 훼방꾼”들을 이끄는 신념은 무엇일까. 정신분석학자인 슬라보예 지젝은 이 테러가 오히려 “자신이 우월하다는 진짜 인종주의다운 확신의 부족”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그의 신간 ‘신을 불쾌하게 만드는 생각들’(글항아리)은 테러집단으로 전락한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문제와, 이를 바라보는 서구인들의 한계를 동시에 짚는다.

저자는 “살인은 정죄해야 한다”면서도 테러집단을 악마로 보는 관점을 비판한다. 그가 보기에는 서구인이야말로 “일상의 평범한 쾌락에 빠져있는” 최후의 인간이다. 자유주의자들이 물질과 안녕을 누리는 동안, 무력밖에 없는 근본주의자들은 “스스로를 파괴할 때까지 광신에 가담”할 뿐이다.

그렇다고 근본주의자는 다 테러리스트가 돼야 하는 것일까. 테러는커녕 쾌락주의자들에게 “그렇게 살면 불행하다”고 자상하게 말하는 불교 근본주의자들을 보라. 차이는 믿음에 대한 확신이다. “테러리스트가 보여준 열정은 오히려 그에게 진짜 확신이 없음을 증거한다. 그가 가진 믿음이 얼마나 연약했기에 풍자 주간지에 실린 한심한 만화를 보고 위협을 느꼈겠는가.” 테러의 본질이 여기 있다.

또 이슬람국가(IS)가 서구의 평등, 자유, 풍자를 공격하는 것은 “자유의 이름으로 잔인성을 과시해 서구의 자유주의자를 참을 수 없게 만들기 위해서”라고 분석한다. 지젝은 샤를리 에브도 사건에 직면한다면 “무엇이든 허용하는 자유주의자의 거들먹거리는 자족을 떨쳐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신성모독에 대한 이슬람교도의 유난스런 민감성은 ‘유혹’에 대한 인식 차에서 비롯된다. 발언ㆍ설득하는 자유를 미덕으로 여기는 서구에서 유혹은 칭송받지만, 이슬람교도는 유혹을 강간보다 나쁜 죄로 여긴다. 여성들이 두발을 내놓는 것도, 하이힐을 신는 것도 죄악이다. 풍자에 동요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런 인식의 괴리가 우리가 직면한 궁지다.

책은 여기서 끝난다. 이렇다 할 제언은 없다. 그는 다만 서문에서, 우리가 노발대발하는 사이 놓치고 있는 것에 대해 말함으로써 이성의 회복을 주문한다. “(샤를리 에브도 테러 여파로) 국민이 군대와 섞이고 있다. 테러집단이 가한 위협으로 사람들은 오로지 하나의 적을 상대하게 됐다. 미국의 애국법(9?11 테러 이후 제정된 테러방지법)이 프랑스식으로 실현된 것 같다. 자신을 감시에 내맡긴 대중이 애국법에 환호하는 꼴이다. 어떻게 하다 이 지경이 되었나.”

김혜영기자 shi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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