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주한 프랑스문화원에서 프랑스 출판 정책에 대한 세미나가 열렸다. 필자가 주제발표자로 참석한 이날 세미나는 다양한 출판 육성정책을 펴고 있는 프랑스의 사례가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무엇인가를 고민해보는 자리였다.
알려진 대로 프랑스는 영화와 출판(만화포함)을 문화산업의 핵심영역으로 삼고 강력한 육성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정책을 효율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영화에서는 스크린쿼터제를, 출판에서는 도서정가제를 시행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에는 아마존과 같은 글로벌 기업이 프랑스 도서 유통시장을 점차 장악해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기존의 도서정가제법을 강화한 소위 ‘반아마존법’을 제정하기도 했다. 이 법안의 주요 골자는 ‘인터넷서점의 할인과 무료배송 금지’다. 또한 프랑스 정부는 도서출판물의 다양성을 유지하기 위해 프랑스 전역에 많은 서점이 있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독립서점의 지원을 위한 다양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자연스럽게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는 국내 도서정가제 문제에 집중되었다. 프랑스 문화원의 출판진흥 담당자인 레티시아 파브로는 “프랑스의 도서정가제는 당시 문화부 장관이던 자크 랑의 이름을 따서 랑법이라고도 부르는데, 이법의 핵심 정신은 도서 판매가격의 경쟁을 제한하고 독립서점을 보호해 다양한 책이 만들어지고 유통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있다”고 말했다. 토론에 참여한 문승현 인천 책도시 사무국장은 “한국의 경우 도서를 단순한 상품으로 여기고 도서정가제 강화를 단통법 정도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토론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인사말을 한 다니엘 올리비에 프랑스문화원장은 “파리 지하철 안에서는 아직까지 책을 읽는 사람들이 있는데 한국은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경우가 많다”면서 “한국에서는 도서 관련 정책에 좀 더 힘을 쏟아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날 참가자들이 언급한 것처럼 프랑스 도서정가제도는 오늘날 프랑스를 세계 5위의 출판 대국(시장규모 45억유로)으로 만들고, 한 해 1만 1,000여종의 도서가 외국어로 번역되는 저작권 수출국의 위치에 올려놓는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그러나 프랑스도 처음부터 도서정가제가 매끄럽게 정착된 것은 아니었다. 1981년 랑법이 시행되자 이 법에 반대하는 서점들이 서점조합을 탈퇴해 새로운 서점단체를 만들어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키려 노력했다. 특히 1980년대 중반 도서 판매 실적이 나빠지자 랑법을 비방하는 사람들은 서점업계의 불황을 도서정가제 탓으로 돌리기도 했다. 그러나 랑법의 시행 효과가 80년대 중반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나자 분열되었던 서점업계도 하나로 통합되었다.
오늘날 프랑스는 잘 정착된 도서정가제의 영향으로 출판생태계가 조화롭게 발전되고 국민들의 책 읽는 습관도 한결같은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또한 도심이나 교외, 시골을 막론하고 작은 서점들이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 국민들도 도서정가제가 국민들에게 불편을 주기 보다는 안정적인 도서보급망을 유지하고, 다양한 도서 접근권을 보장해 주는 꼭 필요한 제도라고 이해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지난해 11월 21일을 기해 신구간 도서의 할인율을 최대 15%로 제한하는 개정 도서정가제가 시행에 들어갔다. 새 정가제 시행 이후 책 정가가 다소 하락했다는 통계가 있는가 하면 일부 지역에서는 책값 할인율에 연연하지 않고 서점을 찾아와 직접 보고 책을 고르는 사람들이 늘었다는 소식도 들린다. 하지만 아직도 변칙적인 할인 행사는 여전하고 국민들도 할인율 축소에 대한 불만이 적지 않아 제도가 잘 정착되고 있다고 보긴 어렵다. 프랑스에서 그랬던 것처럼 도서정가제의 시행 취지와 이러한 제도가 궁극적으로 도서출판물의 다양성을 보장하고 원하는 책을 어느 곳에서나 살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준다는 것을 이해하는데는 시간이 더 필요한 것 같다.
이용준 대진대 신방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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