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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상보기] 폭력의 수혜자들

입력
2015.03.11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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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폭력의 시절이다. 이슬람국가(IS)는 민간인 학살과 인질 참수, 어린이와 여성 인신 매매 등 참혹하게 폭력을 자행하고 있다. 정적 살해의 오랜 전통을 가진 러시아에서는 푸틴 대통령과 대립하던 유력 야권 정치인 보리스 넴초프가 괴한들의 총격으로 사망했다. 국내 사정도 안심할 수 없다. 아이들을 상대로 저지르는 어린이집 교사들의 용서 못할 폭행, ‘을’에 대한 ‘갑’들의 언어 폭력, 군대를 비롯해 곳곳에서 연일 터지는 성폭행 사건 등 전쟁터가 따로 없는 듯 하다. 그리고 주한 미국 대사가 한 행사장에서 피습당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국어 사전에서 테러리스트는 정치적인 목적을 위하여 계획적으로 폭력을 쓰는 사람으로 정의 내린다. 김기종은 자신의 정치적인 목적(전쟁준비 반대)을 위하여 미리 준비해간 칼로 리퍼트 대사를 공격했으니 테러리스트로 볼 수도 있다. 그의 행위는, 미국을 상징하는 리퍼트 대사를 다치게 하는 직접적 효과만큼 이를 통해 대중들에게 공포심을 전하려는 목적도 있었을 것이다. 이런 불안과 공포심으로 사회를 물들이는 것이 테러행위가 노리는 더 큰 효과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그의 술수에 말려들지 않기 위해 우리는 이성적으로 행동해야만 한다. 미국은 차분했고 한국만 흥분했다.

미 국무부는 “분별없는 폭력행위에 위축되지 않을 것”이라는 논평에 이어 “중요한 점은 경호요원이 달려가기 직전에 용의자가 흉기로 공격할 수 있었다는 것”을 지적했다. 당시 리퍼트 대사에 대한 경비와 경호가 허술했고, 관리체계는 무능했다. 유능했던 것은, 이 사건에 대한 청와대와 여당의 프레임 구성능력이었다.

세월호 침몰에서는 대단히 느리고 허둥지둥했던 그들이 이번에는 아주 민첩하게 반응했다. “한미동맹에 대한 공격으로서 결코 용납될 수 없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최초 반응에 이어 “우리 정부와 국민에 충격적이고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강도를 높였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배후가 있는지 모든 일을 철저히 밝혀야 할 것”이라고 했다. 모두 맞는 말인데, 역시 본인과는 아무 상관없는 남의 일인 양 말하고 있다. 박 대통령이 배후를 말하자 새누리당과 검찰은 즉각 북한을 꺼내 들었다. 이것 때문에 흥분했을까.

폭력행위에는 가해자, 피해자, 그리고 폭력의 수혜자가 있다. 보통 수혜자와 가해자가 같기 마련인데, 이번 사건의 경우는 상식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한 극단주의자의 일탈행동으로 보이니 가해자가 얻을 것은 없다. 어쩌면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그 수혜자가 될 듯하다. 때마침 4월 29일에는 재보궐 선거가 있다. 그것도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과 의원직 상실로 치러진다. 연말정산사태와 담뱃값 인상, 납득하기 어려운 인물들로만 돌려 막는 인사 등으로 대통령의 인기는 바닥이다.

경제를 살리겠다는 말은 구호였고, 그럴 의지도 능력도 없어 보이는 청와대와 새누리당으로서는 종북논쟁으로 선거를 치르고 싶을 수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왜 이렇게들 마녀사냥 하듯 종북몰이를 하려 드는 걸까. 국가 안보가 진정으로 심각하게 걱정되어 ‘배후’를 찾으려면 우선 그 행사를 주최한 홍사덕 민화협 의장이자 새누리당 6선 의원부터 철저하게 북한과 연계성 여부를 조사해야 한다. 몇 마디 말로 사과하고 사퇴한다고 끝날 일이 아니다.

고야의 “이성이 잠들면 괴물이 나타난다”란 판화 작품이 있다. 지금 한국의 괴물은 무엇일까. 자기만을 위한 정치를 하는 기득권 집단, 국익에 해를 끼치는 소모적인 이념 논쟁, 갑의 이익을 키우고 을의 권리를 줄이는 제도 등이 해당될 듯하다. 여기에 지금 한 극단주의자의 개인적 일탈을 이용해서 이익을 챙기려는 몇몇 여당 정치인들, 그에 맞장구를 치는 언론과 맹목적인 국민들이 괴물이 되려고 애쓰고 있다.

이동섭 예술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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