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테니스연맹(ITF)은 최근 선수들이 경기에 출전할 때 한 번 정한 국적을 번복할 수 없다는 규정을 추가해 미묘한 파장이 일고 있다.
ITF의 새 규정은 올림픽과 ITF가 주관하는 남녀 국가대항전 데이비스컵과 페더컵에만 적용된다. 그랜드슬램(호주오픈, 프랑스오픈, 윔블던, US오픈) 등 ITF가 주관하지 않는 대회는 예외다. 하지만 이달 초에 열린 2015 데이비스컵과 페더컵에서 선택한 국적은 소급 적용된다.
그러나 소급적용을 통해 더 이상 국적을 바꿀 수 없는 선수들은 새 규정에 대비할 틈이 없었다며 예외를 주장하고 나섰다고 6일 스포츠 전문 채널 ESPN이 보도했다.
케빈 앤더슨(29ㆍ남아공ㆍ랭킹17위)은 소급적용 대상은 아니지만 하나의 국적을 선택해야만 하는 위치에 놓였다. 그는 미국에서 대학을 나오는 등 오랜 기간 미국에서 거주하다 최근 시민권을 얻었다. 미국 국적으로 데이비스컵에 나설 마음은 없다고 밝힌 그는 앞으로도 남아공 국적으로 경기에 참가할 생각이다. 규정이 바뀌었다고 해서 그에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럼에도 그는 ITF가 “선수들에게 1차 경고도 없이 일방적으로 룰을 정해버렸다”며 규정에 반대하는 입장을 보였다. 그는 테니스 불모지에서 뛰는 선수들을 언급하며 “커리어를 위해 다른 국적을 얻어 대회에 출전하는 건 테니스뿐 아니라 여러 스포츠 종목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했다.
소급적용으로 피해를 입는 선수는 남자 테니스의 신예 알자즈 베데네(26ㆍ슬로베니아ㆍ115위)가 대표적이다. 베데네는 슬로베니아 출신으로 영국 시민권을 신청해둔 상태다. 아직 시민권이 나오지 않아 2015 데이비스컵에는 슬로베니아 국적으로 경기에 나섰다. 하지만 그는 ITF 새 규정의 소급적용으로 남은 선수생활 동안 슬로베니아 국적으로 출전해야 한다. 한때 여자프로테니스(WTA)랭킹 4위까지 올랐던 옐레나 도키치(32ㆍ호주)는 유고슬라비아 출신이지만 호주 국적으로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 나갔다. 이후 유고 국적을 재취득했으나 호주 국적 취득을 다시 희망해 현재는 호주 국적을 갖고 있다. 거주하는 국가에서 시민권을 획득하고 이전 국적을 달고 2년 동안 대회에 참가하지 않았다는 조건 하에 선수들은 국적을 자유롭게 바꿀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도키치처럼 국적을 여러 번 바꾸는 선수는 앞으로 보기 힘들 전망이다.
이중 국적으로 태어난 선수들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각각 베네수엘라, 스페인 출신이고 베네수엘라에서 태어나 스페인에서 자란 가르비네 무구루자(22ㆍ20위)는 결국 스페인을 국적으로 정했다. 그는 “한 국적만 선택하는 게 정말 힘들었다. 내 몸속에는 베네수엘라와 스페인 피가 반반씩 흐르는데 하나만 정하고 싶지는 않았다”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선수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국적을 바꾼다. 더 많은 후원을 받고자 혹은 테니스 선진국에서 뛰길 희망해서일 수도 있다. 도키치는 유고 국가 체제 그리고 아버지와 호주 언론의 불화를 이유로 국적을 바꿨다. 혹은 무구루자처럼 어느 한 쪽만 선택할 수 없어 두 나라를 위해 뛰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자신이 유리한 쪽으로 이리저리 국적을 바꾸는 선수들이 늘어나자 이를 방지하는 차원에서 ITF는 새 규정을 발표했다. ‘메뚜기 선수’들에게 보내는 일종의 경고 메시지다. ITF는 선수의 실명이나 국가를 구체적으로 언급하진 않았다.
한편 ITF측은 새로운 규정이 최근 열린 연례 회의에서 90%의 지지를 얻었다고 밝혔다.
금보령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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