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주 동안 한국사회는 한미관계를 흔들 수 있는 두 가지의 뉴스를 연이어 접했다. 하나는 지난 2월 27일 미 국무부 정무차관 웬디 셔먼이 동북아 역사분쟁에서 일본의 손을 들어주는 듯한 발언이었고, 다른 하나는 3월 5일 마크 리퍼트 대사의 피습사건이었다. 이 일들이 한미간 외교 갈등으로 확대되지 않게 정부와 국민들이 노력한 모습은 높이 평가되어 마땅하다. 하지만 이 두 가지 사건을 전후하여 한국 사회에 나타났던 불안감과 과장된 모습은 향후 한미관계의 발전을 위해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셔먼 차관의 발언 후 나타난 한국의 불안감은 최근 워싱턴 외교가에서 보여준 일본의 외교 로비력 확대에서 시작되었다. 일본의 사사카와 평화재단과 일본 국제교류기금이 미국 내 미일 관계 연구자들, 주요 싱크탱크들의 일본 연구사업과 관련 국제회의를 매년 지원해온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게다가 일본 외무성은 올해 대외 홍보 관련 예산을 작년에 비해 3배나 증가한 520억엔으로 책정했다. 이들은 막강한 자금력으로 미국 내 친일그룹인 ‘국화 클럽’의 외연을 계속 확장시키고 있다.
일본의 이러한 노력에 효과가 나타나듯 근래에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한국이 중국에 기울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또한 작년 12월에는 로버트 샤피로 전 상무부 차관이, 올해 1월에는 국가정보국장을 역임했던 데니스 블레어 사사카와 평화재단 이사장이 각각 한일 역사문제에서 일본의 손을 드는 발언을 했다. 불안감이 높아 가는데 국무부의 현직 고위인사까지 일본의 손을 들어주는 듯한 발언이 나왔으니 한국 사회가 요동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반면 리퍼트 대사의 피습사건은 초반기의 충격과는 달리 오히려 대다수 한국인들이 민주주의와 반테러에 관해 미국과 가치관을 공유하고 있다는 확신을 미국에 주었다. 물론 “같이 갑시다”와 “김치” 등으로 한국에 대한 친근감을 표현했던 ‘세준 아빠’의 뛰어난 정치 감각도 큰 몫을 했다. 하지만 지난 며칠 한국사회와 정치권의 일부는 과장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지와 미안함이 ‘숭배’로, 가치관의 공유가 ‘국내정치적 수단’으로 추하게 변색되어 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미국도 우려하는 모습이다.
왜 이런 불안감과 과장된 행위가 나오는 것일까. 우선 불안감은 우리 외교가 원칙은 분명히 세운 반면 이를 위한 전술적 측면이 부족하고, 과장된 행동은 우리가 미국과 가치관을 공유하며 쌓아온 신뢰에 대한 자신감의 부족이 주요 원인 중 하나이다.
위안부 문제를 보는 미국의 시각을 보면 크게 세 가지 분야로 나누어진다. 첫째는 인권의 문제이고, 둘째는 학문적인 접근이다. 이러한 접근에서 오바마 대통령과 미 의회, 다수의 인권운동가들과 관련 역사학자들은 한국이 주장하는 진실에 동의한다. 셋째는 외교전략적 접근인데 여기서 위안부 문제는 미국의 국익에 의해 판단된다. 현재 위안부 문제는 미국이 한미일 지역안보협력 체제를 확립해 중국을 견제하는데 걸림돌로 ‘오해’되고 있다. 일본은 이곳에서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미국의 전략적 시각을 자신의 편으로 만든 것이다. 반면 한국은 유리한 경기장을 뛰쳐나와 불리한 곳에서 적은 예산으로 힘든 경쟁을 하고 있는 셈이다.
다음으로 가치관의 공유는 각국이 상대국에 대한 외교정책을 수립할 때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구성주의의 대표적 이론가인 알렉산더 웬트는 국가의 힘만을 강조하는 현실주의적 접근을 반박하며, 국가들의 정체성과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논리를 발전시켰다. 이에 의하면 과장된 행동은 도리어 정체성에 의문을 품게 하고 공유하는 가치의 근본적인 의미를 의심하게 만든다. 한국에게 한미관계의 증진은 북한 핵 해결과 통일 과정의 필수조건이다. 유연하고 효율적인 외교 전술의 개발과 가치관의 공유에서 오는 자신감 있는 태도로 과장 없이 대미관계에 나서야 한다.
김한권 아산정책연구원 중국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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