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여행을 앞둔 친구가 연일 콧노래를 부른다. 그렇게 좋으냐고 물으니 수줍게 고개를 끄덕인다. 출국일이 가까워질수록 입꼬리가 점점 더 귀를 향해 올라간다. 남의 잘못에 너그러워지고 평소라면 지겨워할 일도 생글생글 웃으면서 처리한다. 그 모습을 보고 덩달아 옆에 있는 사람들까지 기분이 좋아진다. “뭐가 제일 기대돼?”라고 물으니 한참 후에야 수줍은 듯 말한다. “여기가 아니잖아. 그게 제일 좋다.” 기대란 그런 것이다. 정확히 어떤 것을 그리거나 꿈꿀 때도 있지만, 대부분의 기대는 이처럼 뚜렷하지 않다. 뚜렷하지 않다는 것은 그만큼 확장될 가능성이 풍부하다는 말도 된다. “그나저나 몽이는 어떡하지? 낯선 환경에 적응 잘 못하는데.” 몽이는 친구가 키우는 반려견이다. 반려견을 맡길 사람에게 먹는 데서부터 자는 데까지 세세하게 당부하는 것은 물론, 틈만 나면 반려견의 사고나 질병에 대비해 양질의 정보를 찾아 정리한다. 이처럼 기대는 막연하고 걱정은 구체적이다. 기대가 머릿속의 뜬구름 같은 것이라면 걱정은 새털구름이나 양떼구름처럼 형체가 분명히 그려지는 것이다. 기대는 간헐적으로 찾아오고 걱정은 매일 들이닥친다. ‘앞으로 잘될 거야!’라는 기대는 ‘내일 당장 뭘 입지?’라는 걱정보다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기대는 점점 줄어드는데 걱정은 풍성해지니, 간만에 품는 기대는 더욱 애틋하고 소중할 수밖에 없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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