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청문회 선서를 왜 거부했는가'
출판기념회서 수사 축소 거듭 부인
2012년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을 축소ㆍ은폐한 혐의로 기소돼 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김용판(57) 전 서울경찰청장이 10일 서울 중구 세종문화회관에서 ‘나는 청문회 선서를 왜 거부했는가’ 출판기념회를 갖고, “증거 은폐나 축소 지시를 한 적 없다. 역사의 심판을 누가 받을지 지켜봐 달라”고 밝혔다. 김 전 청장이 무죄 확정 판결 이후 처음 공개석상에서 모습을 드러낸 이날 행사에는 전ㆍ현직 경찰과 지인 등 500여명이 참석했다. 책에는 기소에서부터 대법원 판결에 이르기까지 겪었던 심적인 괴로움과 억울함을 주로 담았다. 하지만 공판 과정에서 밝혔던 주장을 되풀이했을 뿐 이를 뒷받침하는 새로운 내용은 없어 논란을 완전히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다.
김 전 청장은 책의 서문에서 “잘못된 선입견과 편견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내가 증거를 축소하고 은폐하도록 지시했다고 하지만 이는 역사의 아이러니이자 시대의 아픔”이라고 밝혔다. 그는 특히 ‘국정원의 조직적 댓글 의혹은 근거가 없다’는 수사발표를 대선후보 마지막 TV토론 직후인 12월 16일 밤 11시 서둘러 발표한 것이 선거 개입이었다는 의혹에 대해서 “대선 전에 결과를 발표해야 한다는 국민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고 야당도 그렇게 요구했다”고 반박했다.
김 전 청장은 수서경찰서 수사과장 시절 수사축소 및 은폐 의혹을 제기한 새정치민주연합 권은희 의원에 대해서는 “소가 웃고도 남을 일”이라는 다소 과격한 표현으로 비판했다. “위증의 전형적인 사례와 너무나 일치했다”고 권 의원을 깎아 내렸다. 책에는 권 의원이 A라는 익명으로 처리돼 있다. 그는 “신빙성이 없다고 결론이 내려진 그의 말은 여전히 떠받드는 것도 책을 쓴 강력한 동기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국회 청문회에서 선서를 거부한 것에 대해서는 “주어진 방어권을 행사한 것으로 내 자신이 당당했기 때문에 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김 전 청장은 2013년 8월 ‘국정원 댓글 의혹 사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에서 증인선서를 거부했다. 1948년 개원한 이후 국회에서 증인 선서를 거부한 사람은 그가 처음이었다.
하지만 김 전 청장은 “발표 시기와 내용에 아쉬움이 남는다” “이날 발표가 당시 박근혜 후보에게 유리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이견이 없을 것” 등 수사의 공정성을 의심한 법원의 지적과 판단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특히 경찰 수사발표와 달리 대선 후의 검찰 수사에서 원세훈 당시 국정원장의 지시에 따라 조직적인 선거 개입이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난 점을 감안할 때 부실수사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은 김 전 청장의 이런 행동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권은희 의원도 이날 본보와의 통화에서 “과거에 했던 얘기만 반복한 것 아니냐. 신경 쓰지 않는다”고 밝혔다.
남상욱기자 thoth@hk.co.kr
정준호기자 junho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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