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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요리의 즐거움

입력
2015.03.10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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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집에서 요리를 하는 시간이 늘었다. 요리라고 해야 거창한 것은 아니다. 간단한 볶음밥인데 색다른 재료를 넣어 보거나 모양을 특이하게 담아본다. 김치찌개나 파스타 요리에 나름의 방법을 찾으려는 시도 정도이다.

사실 볼품도 없고 맛도 그저 그렇고 설거지 거리만 쌓이지만, 다하고 난 뒤에는 무언가를 이루었다는 뿌듯함이 있다. 감히 “창조”해 내었다고 표현하고 싶을 만큼 기쁨이 크다. 블로그에서 빌려온 레시피이고 일관적이지 않은 맛이지만 어쩌다 맛있는 경우에는 감동을 느끼기도 한다. 내가 무언가를 만들고 더구나 의미 있게 만들기가 힘든데, 음식을 만드는 것은 간단하지만 사람들과 나눈다는, 나를 보살핀다는 의미를 줄 수 있어 특별하게 느껴진다. 최근에 TV에서도 쿡방(Cook+방송)이라고 요리가 나오는 프로들이 많이 늘었다. 전문가들의 현란한 솜씨도 나오지만, 일상적인 요리 모습을 보여 주기도 하고 화려한 음식이 아니라 매 끼니 우리가 먹는 소박한 음식을 만들기도 한다.

먹는 행위에 몰두하는 프로들이 늘어나는 것을 식욕에만 집중하는 욕망의 왜곡으로 표현하는 사람들도 있고, 삼포시대에 소박한 행복을 찾으려는 노력으로 해석하기도 하고 요리하는 사람들이 주로 남성들인 것과 관련해 내 남편이, 내 애인이 저렇게 해주면 좋겠다는 여성들의 바람이 방송을 보는 관심으로 향한다고도 한다. 최근에는 셰프들이 나와 예능감을 뽐내기도 해서 요리와 방송을 보는 것이 더욱 재미있어졌다. 어떤 기사에서는 셰프테이너(chef와 entertainer의 합성어)라는 말까지 쓰기도 한다. 음식을 만드는 행위 자체가 무언가를 의미 있게 만드는 활동이면서 재미를 주니 더욱 관심이 갈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왜 지금 음식을 만드는 것에 열광할까? 개인적으로 내 관심의 근원은 내가 먹는 한 끼가 온전히 나의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경험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경험이 나를 즐겁게 할 뿐만 아니라 내가 대접하는 사람들의 마음에도 추억으로 남기 때문일 것이다.

유튜브에 ‘Great depression cooking’이라는 이름으로 여러 개의 영상이 있다. 90세가 넘은 할머니가 힘들었던 시절의 이야기를 하면서 그 당시 가족을 위해 할 수 있었던 간단하고 소박한 음식들을 소개하는 것이다. ‘Great depression’ 하면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인 나는 우울증이 먼저 떠오르지만 1930년대 경제적으로 암울했던 대공황 시기를 의미한다. 어쩌면 경제적으로 매우 힘들었던 시기에 기분도 우울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 시기에 생존을 위한 요리로 제한된 재료들로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음식을 만드는 모습에서 가족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느껴져서 더 마음이 끌렸다. 지금은 풍요 속에서 느끼는 상대적 빈곤감이 큰 시기여서 소박하고 간단한 음식이 오히려 더 마음에 와 닿는다.

음식 만들기는 먹기 위한 과정이지만 사실은 마음과 사람의 관계를 어루만지는 과정이다. 우리 누구에게나 추억의 음식이 마음 한 켠에 있다. 나에게 추억이 깃든 음식은 추어탕이다. 기운을 내라고 할 때마다 어머니께서 만들어 주셨기 때문이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음식을 만들어 주는 장면이 자주 나오는 것은 그것이 사랑의 표현이기 때문일 것이다. 즐겨 보았던 ‘금옥만당’이나 ‘바베트의 만찬’ ‘식객’ 등 음식을 주제로 한 영화들이 요리를 하면서 스스로와 사랑하는 사람을 돌보는 메시지들이 가득했기 때문에 더 인기가 있었을 것이다.

요리는 정말 잘 하기는 어려워도 그냥 하기는 쉽고 재미있다. 누군가를 위해, 나를 위해 오롯이 내가 만들어 내는 즐거움이 있다. 그리고 여러 번 할수록 맛이 나아지는 발전을 느낄 수 있어 더욱 좋다. 간단한 음식도 좋다. 지금 내가 무언가를 위해, 누군가를 위해 의미를 찾고 싶을 때 작은 요리를 만들어 보자. 정성을 다해서.

박은진 인제대 일산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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