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처럼 봄이 더딘 적도 드물다. 삼한사온(三寒四溫)마저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육당(六堂) 최남선(崔南善ㆍ1890~1957)은 ‘조선상식문답’에서 “겨울에 추위가 줄곧 계속하지 않고, 며칠 추웠다가 며칠 풀리기를 되풀이하는 현상을 속담에 삼한사온이라고 이른다”라면서 시베리아 방면의 고기압이 커져서 북풍이나 북서풍이 세지면 추워졌다가 그 반대면 추위가 풀리는 것이라면서 “이 현상이 현저하지 못한 해에는 무서운 추위를 당했다는 소리가 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올해처럼 삼한사한(三寒四寒)이 계속될 때 사람들은 꽃소식을 전하는 화신풍(花信風)을 기다린다. 북송(北宋)의 주휘(周煇)는 ‘청파잡지(?波雜志)’에서 무려 스물 네 번의 화신풍이 있다고 말했다. 1년에 24절기 중에 화신풍과 관련된 절기는 넉 달 여덟 절기다(괄호 안은 양력). 음력 12월의 소한(小寒ㆍ1월 6일경)과 대한(大寒ㆍ1월 21일경), 정월의 입춘(立春ㆍ2월 4일경)과 우수(雨水ㆍ2월 19일경), 2월의 경칩(驚蟄ㆍ3월 6일경)과 춘분(春分ㆍ3월 21일경), 3월의 청명(淸明ㆍ4월 5일경)과 곡우(穀雨ㆍ4월 20일경)를 뜻한다. 소한부터 곡우까지 약 120일 동안 닷새에 한 번씩 모두 스물 네 번의 꽃바람이 분다는 것이다.
주휘는 ‘청파잡지’ 11장 ‘화신풍’에서 “강남에서는 초봄부터 초여름까지 모두 스물 네 번의 화신풍이 부는데 매화풍(梅花風)이 가장 먼저고 연화풍(?花風)이 가장 뒤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중국에서 강남은 따뜻한 양자강 이남을 뜻하기 때문에 음력 12월의 소한(小寒)때도 화신풍이 분다는 것이니 우리와는 맞지 않다. 그래서 청나라의 왕호(汪灝)는 ‘광군방보(廣?芳譜)’에서 “3월에 꽃이 필 때 부는 바람 이름이 화신풍이다”라고 3월에 부는 바람을 화신풍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북송의 승려 혜홍(惠洪)이 편찬한 ‘영제야화(冷齋夜話)’에는 “사공우는 한 번 내리지만/ 화신풍은 여러 번 부네(一?社公雨/ 數番花信風)”라는 시가 있다. 사옹우(社翁雨)라고도 하는 사공우는 입춘 후 다섯 번째 무일(戊日)인 사일(社日)에 내리기 때문에 사공우라고 하는데 꽃을 재촉하는 비로 여겼다.
봄에 부는 찬 바람을 ‘꽃을 시샘하는 바람’이란 뜻의 투화풍(妬花風)이라고 한다. 조선 중기의 상촌(象村) 신흠(申欽ㆍ1566~1628)은 시 ‘감춘(感春)’에서 “꽃 재촉하는 비 내리더니 꽃샘바람 또 부네/ 겨우 꽃 필 때인데 벌써 떨어지게 하네(催花雨妬花風/ ?到開時已敎落)”라고 읊었다. 지봉(芝峯) 이수광(李?光ㆍ1563~1628)은 신흠보다 3년 먼저 태어나 같은 해 세상을 떠났는데, 광해군 8년(1616) 순천(順天) 부사(府使)가 되었다. 이수광은 이때 ‘승평록(昇平錄)’을 편찬하는데, 승평이란 순천의 별명이다. 이수광은 이해 2월 23일 청명에 쓴 ‘여러 꽃이 비바람 때문에 모두 졌구나(雜花因風雨盡落)’라는 시에서 “병든 몸으로 봄을 만나니 집 생각이 곱절로 나네/ 객창은 바다구름 물가 끝에 쓸쓸한데/ 동풍이 세게 부니 무정도 하구나/ 겨우 꽃 좀 보려 했더니 꽃샘바람이 부네(病裏逢春倍憶家/ 客窓寥落海雲涯/ 東風最是無情思/ ?見催花又妬花)”라고 노래했다. 신흠은 사후 문정(文貞)이란 시호를 받는데 그에게 시호를 내리는 시장(諡狀)에 따르면 어려서 부모님을 다 잃고 할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한다. 할아버지가 여러 손자들을 모아다 춘(春)자로 제목을 주면서 한 구절씩 지어보라고 하자 신흠은 “천지만물 가운데 봄이 으뜸이다”라고 지어서 할아버지가 대성할 것이라고 기대했다고 전하니 어릴 때부터 봄을 좋아한 아이였다.
봄은 늘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계절로서의 봄이고, 다른 하나는 시인 이상화(李相和)가 ‘개벽(開闢)’ 1926년 6월호에 발표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시에서 말해주는 것처럼 시대적 의미의 봄이다. 시대의 봄을 기다리는 마음은 자연의 봄 기다리는 마음 못지 않았다. 고려인 이규보는 ‘봄을 기다리는 부(春望賦)’에서 “출정 나간 군사가 먼 관산(關山) 밖에서 변방에 다시 돋는 풀을 보거나, 남쪽 상수(湘水ㆍ굴원이 빠져 죽은 곳)로 귀양 가던 유배객이 해질 무렵 푸른 신나무를 바라보면서 간절하게 발길을 멈추며 가슴 속 깊은 한에 잠기리니 이것이 집 떠나 끌려 다니는 자의 춘망(春望)이다”라고 말한 것도 이런 류이다.
더디 오는 자연의 봄이야 어쩔 수 없지만 시대의 봄이 오기를 많은 사람들이 희구하는 한심한 세상을 만들어서는 안 되겠다.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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