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 개념·법적 처벌 기준 미흡 "일반형사범과 차별화한 법 제정"
테러방지법안 2건 국회 계류 중, 사찰·공안몰이 우려 찬반 팽팽
우리 사회 이념적 극단주의는 단순히 진보와 보수의 충돌을 넘어 외국대사를 피습하고, 국회의원을 폭행하는 수준으로 비화했다. 이 같은 ‘정치적 폭력’은 사인 간 폭력보다 엄벌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지만, 아직 법적 처벌 기준은 미흡하다. 정책 때문에 국회의원을 폭행해도 벌금형, 집행유예가 일반적인 상황에서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 피습 사건을 계기로 정치적 범죄 처벌 기준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테러 범죄’말만 무성… 형벌적 규정 없어
서울중앙지검은 피습사건 당일인 5일 “테러행위로 볼 여지가 있다”고 하더니, 다음날은 단어 선택에 신중했다. 이상호 서울중앙지검 2차장은 “테러 개념이 계속 변화해 오면서 (특별한 기준 없이) 일상적으로 쓰여 왔고 외신도 이번 사건에 테러 대신 ‘어택(attack:공격)’표현을 쓰는 상황에서 테러라고 단정적으로 표현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진태 검찰총장은 이번 피습사건을 언급하며 “사회 전체의 평화와 안전을 위협하는 테러 등 범죄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며 ‘테러’ 용어를 다시 사용했다.
현행 테러 관련 규정으로는 1982년 마련된 국가 대테러 활동지침이 있지만 테러 발생시 대응체계가 중심일 뿐 구체적인 테러에 대한 정의나 처벌 관련 조항은 없다. 국회 입법조사처 관계자는 “김씨 사건을 두고 나오는 테러 표현은 상징적인 것으로 봐야 한다”며 “테러범 처벌 법안을 따로 만드는 것은 가해자를 집단이 아닌 개인으로까지 확장시킬지, 어떤 정치적 주장을 테러의 동기로 인정할 수 있는 지 등 복잡한 사항이 많아 쉽지 않다”고 말했다. 반면 손동권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우리나라도 테러범죄의 가시권에 들어온 이상, 법치국가 이론과 인권이 훼손되지 않는 선에서 일반형사범과 차별화된 처벌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며 테러관련 특별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우선 형법 상의 적합한 양형 기준 마련해야
테러 관련 특별법을 도입하기 보다는 기존 형법을 통해 엄정한 처벌 기준을 만드는 것이 먼저라는 의견도 만만찮다. 오욱환 변호사는 “이념형 범죄를 엄단하려 양형을 늘리는 특별법을 도입하기보다는 기존 형법을 통해 범죄 양태나 의도, 결과 등에 바탕한 처벌이 우선”이라고 주장했다. 대법원은 각 혐의 별로 양형 기준을 만드는데, 정치적 폭력을 별도로 고려 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법부는 국회의원 폭행에는 벌금형, 외국 대사에 준비해온 돌을 던진 것에는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어버이연합 소속 이모(당시 73)씨 등은 2013년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논란 관련한 전단지를 나눠주던 전순옥 당시 민주당 의원을 폭행해 전치 3주 부상을 입혔지만, 벌금 150만원에 그쳤다. 2009년 전여옥 당시 한나라당 의원을 폭행해 전치 8주의 부상을 입힌 부산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이모 대표는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리퍼트 대사를 피습한 우리마당 독도지킴이 대표 김기종씨 역시 2007년 주한 일본 대사를 향해 미리 준비해온 시멘트 조각 2개를 던졌고 대사관 직원이 부상당했지만 김씨는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미국의 경우 2013년 미국 주재 사우디아라비아 대사 암살 등을 모의하다 연방수사국(FBI)에 체포된 이란계 미국 시민권자에게 징역 25년을 선고했다. 당시 미 법원은 “미국과 미국의 이익에 위해를 초래하려는 다른 사람들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그런 사건에는 관용이 베풀어지지 않는다는 교훈을 반드시 배워야 한다”며 일벌백계를 중형 선고의 이유로 밝혔다.
테러방지법은 신중한 접근 필요
물론 정치 폭력은 처벌에 앞서 막을 수 있다면 더 없이 좋을 것이다. 김진태 총장도 미 대사 피습사건 이후“선진국과 달리 이러한 범죄의 예방을 위한 법률적인 수단 등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고 있는 등 여러가지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현재 국회에 계류된 테러 방지법안은 지난 2월 이병석 새누리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국민보호와 공공안전을 위한 테러방지법안과, 같은 당 송영근 의원이 2013년 3월 발의한 국가대테러활동과 피해보전 등에 관한 기본법안 등 2건이다. 2건 모두 국가 대테러 담당기구의 장이 테러단체의 구성원으로 의심되는 자에 대해 출입국, 금융거래 및 통신이용 등 관련 정보를 수집할 수 있도록 했다. 수사상의 편의를 최대한 배려하는 내용인데, 이 때문에 한편으로 수사기관이 사이버 사찰과 공안몰이에 악용할 소지도 많아 찬반 의견이 뜨겁다.
‘시민과 함께하는 변호사들’의 이헌 변호사는 “북한의 도발 등 한국의 안보 현실에 비춰보더라도 미국의 ‘애국법’(테러방지법)처럼 ‘반테러법’제정에 관한 본격적인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며 “명백한 테러분자에 대한 감금, 통신기록 열람 등의 조치를 마치 국민 누구나 기본권을 침해 당할 수 있다고 확대 해석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반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박주민 변호사는 “수사 초반부터 국가보안법으로 향하는 김기종씨 사건에서 보듯 테러방지법이 도입되면 수사기관의 막무가내 식 개인정보 취합으로 오남용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발적으로 자기 판단을 못해 범행을 저지른 사람에게도 무분별하게 적용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조원일기자 callme11@hk.co.kr
손현성기자 hs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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