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동연구원 조사 결과, 스펙 쌓는 학생들 기대와 반대
'현역'보다 월급 최고 83만원 적고, 정규직·대기업 취업률도 떨어져
서울 소재 중위권 대학을 졸업한 김민수(26ㆍ가명)씨는 취업 재수생이다. 지난해 하반기 연봉 3,200만원을 주는 중견 그룹에 취업했지만 목표했던 기업 공채에서 모두 낙방하자 재도전을 택했다. 그는 “청년실업이 심각한 상황에서 배부른 소리라고 하겠지만 막상 합격 소식을 듣고는 ‘나의 한계가 여기까지인가’ 하는 생각에 기쁨보다 패배감ㆍ좌절감이 더 컸다”고 털어놨다. 1년간의 캐나다 어학연수와 각종 봉사활동을 해온 김씨는 “4년제 대학을 졸업한 남자치고 적은 나이도 하나의 스펙이라고 생각한다”며 취업 준비를 위해 학교 도서관으로 향했다.
박규민(29ㆍ가명)씨는 올해로 취업 삼수째다. 그는 지난 설 연휴에도 어학성적 등 부족한 스펙을 메우기 위해 고향 대신 학교 도서관을 찾았다. 서울 소재 대학의 전자공학과를 평균학점 3.43으로 졸업한 그는 삼성에서 인턴사원으로도 일했다. 박씨는 “지난해에는 정말 취업이 될 줄 알았다”고 했다. 영어 면접에 대비해 A4용지 10여장 분량의 예상 문답을 모두 외웠고, 기업 분석 스터디도 빠지지 않았다. 면접날에는 남성용 BB크림도 발랐다. 하지만 결과는 모두 낙방이었다. 박씨는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갈 곳이 학교 도서관 밖에 없는 현실이 슬프다. 어학성적을 올리는 게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처럼 극심한 청년실업으로 자의 반 타의 반 ‘취업재수’를 택하는 취업준비생이 늘고 있지만 준비기간이 길수록 오히려 평균 연봉은 하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취업준비 기간이 길수록 스펙 등 인적자본을 축적할 기회가 많아져 높은 임금을 받을 수 있을 거라 기대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인 셈이다.
9일 한국노동연구원의 ‘청년층 노동시장의 주요 특징과 정책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취업재수생의 정규직, 대기업 취직 비율은 각각 67.8%, 12.2%에 그쳤다. 반면 휴학 유경험 취업자는 79.7%가 정규직으로 취업했고, 31.6%가 대기업 일자리를 얻었다. 월평균 임금 역시 휴학 유경험 취업자(265만원)와 휴학 무경험 취업자(234만원)에 비해 취업재수생은 182만원으로 가장 낮았다. 취업 3년차가 됐을 때 고용안전성ㆍ발전가능성ㆍ복리후생ㆍ승진 등을 평가한 만족도(5점 만점) 역시 취업재수생(3.45점)이 휴학 무경험자(3.59점)와 휴학 유경험자(3.56점)보다 떨어졌다. 이번 연구는 2009ㆍ2011년 졸업자와 대졸자 직업이동 경로조사 결과를 분석한 것으로 지난해 12월 작성됐다.
문제는 상황이 더욱 악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청년층(15~29세)의 공식 실업률은 9.2%로 계속 증가 추세이고, 통계청의 1월 고용동향을 분석한 청년층의 체감실업률은 21.8%(107만명)에 달한다. 이 가운데 취업재수생은 40만여명에 달할 것으로 정부는 추산하고 있다. 결국 양질의 청년 일자리를 만들지 않는다면 취업 준비에만 장기간 매달리는 재수생들이 많아지고, 이는 경기침체와 사회적ㆍ세대간 갈등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지적이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청년층에게 갈 만한 일자리가 주어지지 않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며 “국내 10대 대기업이 비용절감 등의 목적으로 기존에 직접 고용하던 일자리를 아웃소싱해 만든 비정규직 일자리가 43만개로 추산되는 만큼, 열악한 일자리의 임금개선 등을 통해 청년실업 해소의 실마리를 풀어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변태섭기자 liberta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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