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각가격 부담에 금호리조트 지분은 제외 등 조건 제시
금호아시아나그룹이 그룹의 뿌리인 금호고속을 되찾기 위해 우선매수청구권을 행사했다. 예상을 뛰어 넘는 매각가격을 낮추기 위해 금호고속이 보유한 금호리조트 지분 48.8%는 인수하지 않겠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금호고속이 3년 만에 창업일가 품에 안길지 주목된다.
금호그룹은 인수 의사 통보 시한인 9일 오후 금호고속 지분 100%를 소유한 IBK투자증권-케이스톤파트너스 사모펀드(이하 IBK펀드)에 “금호고속을 인수하겠다”는 내용의 공문을 발송했다. 금호그룹은 금호리조트 지분 제외 등 몇 가지 조건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지난달 23일 IBK펀드는 우선매수청구권을 가진 금호그룹에 지분 매각가격을 제시했다. 가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투자업계에서는 4,800억원 안팎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후 양측은 금호고속 매각가격을 둘러싸고 신경전을 벌였다. IBK펀드는 금호고속의 법인세 이자, 감가상각비 차감 전 영업이익의 7∼8배 수준으로 가격을 정했지만 금호그룹은 곧 호남고속철도가 개통되면 호남권이 기반인 금호고속은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논리를 펴며 2,000억원대를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하반기 참가자가 없어 본입찰이 무산, IBK 펀드가 제시한 가격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점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에서는 매각가격이 높아 금호그룹이 이 같은 조건을 제시한 것으로 보고 있다. 금호리조트 지분을 빼면 금호고속 가격은 800억원 정도 낮아지기 때문이다.
금호그룹은 주력계열사인 아시아나항공 경영권이 걸린 금호산업 인수전도 동시에 치르고 있어 자금 부담이 적지 않은 상황이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은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을 위해 사재 3,300억원을 출연해 자금 여유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재계에서는 박 회장의 현재 현금성 자산을 2,000억원 전후로 보고 있다.
금호고속 인수에 4,800억원을 쏟아 붓는다면 계열사 자금을 총 동원해도 1조원 규모로 추정되는 금호산업 인수 때 더 큰 자금난에 직면할 수 있다. 박 회장이 우호적 투자자의 도움 없이 금호그룹을 재건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인 것이다.
박 회장 선친인 고 박인천 회장이 1946년 창업한 광주택시에서 시작된 금호고속은 현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모태다. 2006년 대우건설 인수로 ‘승자의 저주’에 발목 잡힌 금호그룹은 자금난을 겪다 2009년 워크아웃에 들어갔고, 2012년 금호산업은 금호고속 지분 100%를 IBK펀드에 매각했다. 하지만 그룹 차원에서 상징성이 큰 기업이라 2년의 매각 유예 기간을 거쳐 지난해 하반기 금호고속이 매물로 나왔을 때부터 강한 인수 의지를 보였다. 금호그룹 관계자는 “금호고속과 금호산업을 모두 찾아와 금호그룹을 재건한다는 큰 틀에는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IBK펀드는 금호그룹이 금호고속 인수대금을 내지 못하면 공개경쟁을 통해 제3자에게 금호고속을 매각할 계획이다. 이 경우 금호그룹이 금호고속을 되찾아 오는 길이 더욱 험난해질 수 있지만, 입찰자가 없어 매각 자체가 불발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금호그룹과 IBK펀드는 금호리조트 지분 제외, 대금 납부 기한 및 방법 등 세부 조건을 놓고 협상을 벌일 전망이다. IBK펀드 측은 “금호그룹 측 조건을 다각도로 검토한 뒤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창훈기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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