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안에 국가 있다.’ 필자가 살고 있는 성북구 김영배 구청장의 책 제목이다. 책 표지에는 다음과 같은 발췌문이 나온다. “이제는 동네의 시대, 마을의 시대로 가야 합니다. 국가의 시대와 시장의 시대를 지나서 시민의 시대가 되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자기가 살아가는 단위인 마을과 동네에서 생활공동체를 통해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 나가는 시대, 위로부터의 시대가 아니라 살아가는 자신의 생활근거지로부터, 그야말로 아래로부터의 새로운 정치, 새로운 시대로 가야 합니다. 그게 바로 시민의 시대고, 마을의 시대고, 동네의 시대입니다. 민주공화국을 이끄는 공당의 역할은 이제 마을과 동네에 뿌리를 두고 마을정당, 동네정당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말하는 공공성의 정치, 생활의 정치이고, 시민의 정치, 마을의 정치입니다.”
성북구에서는 2012년 주민과 함께 일궈낸 구정 사례집을 펴내기도 했는데 책 제목이 ‘주민과 함께 만드는 참여 거버넌스를 이야기 하다’이다. ‘기존의 통치나 정부를 대체하여 여러 분야의 다양한 주체들이 함께 참여하여 정책을 만들고 실현해나가는’ 거버넌스(協治)의 이름으로 주민참여예산제, 5대 열린 토론회, 위원회와 아카데미 등 각종 주민자치활동을 추진했다는 것이다. 성북구는 금천구와 더불어 서울시 자치구들 중 주민, 비영리단체, 행정이 협력하여 자체적인 마을 만들기 중간지원조직을 설립한 곳이며 협동조합, 사회적 기업, 마을기업 등을 중심으로 경제적 효율과 경쟁만이 아니라 사회적 가치를 공유하면서 함께 경제생활을 꾸려나가는 ‘사회적 경제’를 주도적으로 실천하고 있는 자치구이기도 하다.
필자가 살고 있는 한 특정 자치구 얘기를 길게 늘어놓은 건 소위 ‘시민정치’라 일컫는 대안적 정치모델의 구체적인 모습을 그려볼 수 있는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사실 그동안 한국정치 발전의 동력은 정치사회(정치권)보다는 시민사회가 제공해왔다. 이는 멀리 동학과 독립운동으로부터 4ㆍ19혁명과 광주민주화운동을 넘어 1987년에 성취한 ‘밑으로부터의 민주화’에 이르기까지의 긴 역정에 잘 나타나 있으며 민주화 이후에도 시민운동, 촛불집회, 그리고 소위 ‘안철수 현상’으로 불렸던 시민정치의 흐름으로 이어져왔다.
최근 한 일간지는 ‘이젠 시민이다’라는 어젠다 하에 기존 대의민주주의 모델의 유권자로서의 시민을 넘어 참여와 자치를 통하여 자발적으로 공공성을 추구하는 시민 모델을 대안으로 제시하기도 하였다. 시대적 화두인 안전 문제부터, 경제개혁, 민주주의, 남북관계 등 굵직굵직한 이슈에 있어 성숙한 시민성과 각성된 시민참여를 해법으로 내놓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시민정치의 가능성은 중앙정치 수준의 큰 변화뿐 아니라 지방정치 차원의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에서도 찾을 수 있다. 동네 안의 시민정치는 우리 주위의 일상과 삶의 터에서 민주주의를 실천하고 그 이상을 향하여 발전해나갈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또한 시민사회의 자치 역량을 키우는 민주주의의 학습장으로 작동하면서 더 큰 시민정치를 위한 주춧돌의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
가령 참여예산제와 사회적 경제를 위시하여 각종 마을 만들기 활동을 통하여 축적된 협력과 신뢰의 경험과 거버넌스의 학습효과가 더 큰 정치의 장으로 전이되고 확산될 수 있는 것이다. 이 외에도 동네 안의 시민정치의 가능성은 여러 곳에서 찾을 수 있다. 현재 여러 가지 잡음이 들리고 있긴 하지만 곧 있을 3ㆍ11 조합장 동시선거는 농어촌 지역 동네의 시민정치에 있어 새로운 시대를 열 수 있는 기회이다. 가능성은 필자의 직장인 서울대에도 있다. 공부하는 부모들의 모임인 ‘맘인스누(SNU)’는 모임의 성격을 사회적 협동조합으로 전환하여 조합원들만의 필요 충족을 넘어 지역사회와의 연계 등 민주적·공적 가치를 추구하고자 하고 있다. 정치발전에 있어 물론 정치인들의 각성과 제도권 정치의 개혁이 중요하다. 그러나 가능성은 의외로 가까운 우리 동네 안에도 있다.
김의영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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