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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현장 잡부에서 CEO 변신… 사진작가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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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현장 잡부에서 CEO 변신… 사진작가 도전

입력
2015.03.0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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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세 기울며 검정고시로 고교 졸업

대입 합격ㆍ진학 포기… 군 입대

전역 후 밑바닥 전전하다 회사설립

“감동ㆍ울림의 사진으로 소통”

이기호(48ㆍ사진) 조은소리보청기 대표는 ‘감동의 소리’를 전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보청기 전문 기업 CEO다. 하지만 단순한 CEO에 그치지 않는다. 소리 기부 천사로 유명한 그에게는 대구청각언어장애복지관 후원회장, 영상전문회사 ‘나무’ 고문 등 다양한 수식어가 붙어 다닌다. 검정고시 출신이기도 한 그는 한때 택시 운전대를 잡았고, 건설현장 잡부로 전전하다 카센터를 경영하기도 했다. 뒤늦게 대학에 진학해 보청기를 배웠고, 내로라 하는 보청기 전문가로 변신했다. 이제 그는 인생 3막에 도전하고 있다. 사진작가로서, 영상제작감독으로서. 이스탄불-경주세계문화엑스포 홍보영상 제작에도 참여한 그는 “지금까지 보청기를 통해 사랑의 소리를 들려주었다면, 이제는 사진으로 보여주는 일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소리기부 천사로 유명하다. 10년 이상 청각장애인을 위해 보청기를 기부하고 있다. “보청기만 있으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아이가 수화를 배워야만 하는 것을 보고 보청기를 기증하게 됐다”는 그는 지금까지 시가로 20억원 어치가 넘는 보청기를 저소득 청각장애인들에게 기부해왔다. 글로벌금융위기로 직원들 월급 주는 일조차 빠듯할 때도 보청기 기부를 멈추지 않았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난청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고민하다가 보청기를 기부하게 됐는데, 이것이 매출증대라는 선순환의 고리가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이 대표가 조은소리보청기를 설립한 것은 1995년. 선친의 권유로 마을금고에서 500만원을 대출받아 보청기를 수입, 판매하는 일을 시작했다. 그 일을 하기 전까지 그의 인생은 순탄하지 않았다. 유년시절은 유복했지만 철이 들 무렵 부친의 사업이 기울어 고등학교조차 제대로 졸업하지 못했다. 검정고시로 대학에 합격했지만 학비가 없어 입대했다. 전역 후에도 택시운전, 건설현장 잡부 등을 전전했다. 운전병 경력을 살려 카센터를 운영하기도 했지만 큰 돈을 벌지 못했다.

보청기는 아직도 완제품이나 핵심부품을 수입해 판매하는 사업이다. 그는 단순히 수입ㆍ판매에 만족하지 못했다. “기왕 시작한 것, 최고가 되고 싶었다”는 그는 뒤늦게 지역 전문대학에 진학했다. 대구한의대에 편입했고 한림대 청각대학원, 경북대 의공학대학원으로 진학해 박사과정까지 마쳤다. 미국 오스트리아 독일 덴마크 등의 난청, 보청기 관련 교육도 수료했다. 이를 기반으로 지역 한 대학에서 7년간 후학을 양성하기도 했다. “그때 가르친 제자들이 우리 회사의 핵심 인재로 근무하고 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그는 좋은 제품을 만드는 데 힘을 쏟았다. 2006년에는 독일 지멘스그룹의 제품을 국내시장에 독점적으로 공급했다. 기술제휴를 통해 신개념 디지털보청기를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판매했다. 특히 완벽한 서비스를 위해 회사에 언어치료사와 청각에 관한 전문가들을 배치하고 있다. “보청기를 쓰는 고객의 대부분은 노인과 장애인”이라며 “세상의 좋은 소리를 모든 사람들이 들을 수 있게 하는 기업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탄탄대로일 것 같은 사업은 2번의 위기에 휘청거렸다. 막 사업이 본궤도에 오를 즈음인 외환위기 때난 급등한 환율로 존립을 위협받았다. 특히 2000년대 후반 글로벌금융위기 때 닥쳐온 2차 위기는 심각했다. “외환위기 때는 규모가 크지 않아 그나마 나았는데, 이때는 정말 ‘큰일 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며 “어려움 속에 회사를 지켜온 직원과 프랜차이즈 가맹점, 소비자들 덕분에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고 말했다. 보청기부품 국산화 프로젝트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요즘 그는 인생 3막에 도전하고 있다. 사진작가, 영상제작감독의 길이 그것이다. 글로벌금융위기를 겨우 극복했다고 생각이 든 2012년쯤 양친 어른이 6개월 간격으로 별세했다. 외아들인 그에는 충격이 너무 컸다. 19개나 되는 대외직함과 강의도 그만 두었다. 카메라를 들고 미친 듯이 산하를 헤매며 셔터를 눌렀다. “무작정 시작한 것 같았는데, 사랑의 메시지를 보여주는 데 사진이 최고인 것 같다”고 말했다. 원래 소질이 있었는지 금세 유명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3년 전 눈 덮인 덕유산에서 2박3일에 걸쳐 촬영한 상고대와 일출 사진 등을 타임랩스로 제작했고, 미국의 영화제작사에서 ‘춤추는 붓다, 원효’ 다큐멘터리에 쓰겠다는 제안을 받았다. 타임랩스는 일정한 간격으로 찍은 사진을 정상보다 빠른 속도로 보여주어 시간의 흐름을 압축해 표현하는 특수 영상기법으로 어떤 영상물보다 강한 인상을 준다.

작품의 예술성을 인정받은 그의 작품은 2013년 이스탄불-경주세계문화엑스포 개막식에도 소개됐다. 터키정부의 초청으로 엑스포 홍보영상 제작에 참여하기도 했다. “좋은 사진은 스토리가 있는 것으로, 감동과 울림이 있어야 한다”는 그는 “그런 사진으로 사람과 소통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강은주 엠플러스한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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