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터미널’의 한국판 주인공인 수단인이 내전을 겪던 고국의 강제징집을 피해 한국 땅을 밟은 지 14개월 만에 난민심사 신청 자격을 얻었다. ‘터미널’은 쿠데타로 귀국도 미국 입국도 못하게 된 동유럽인이 뉴욕 공항 환승구역에서 9개월을 버틴 일을 다뤘다.
8일 공익법센터 어필에 따르면, 서울고법 행정6부(부장 윤성근)는 수단인 A(24)씨가 “난민인정 심사를 받게 해달라”며 인천공항출입국 관리사무소장을 상대로 낸 심사 불회부 취소소송에서 원고승소 판결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인 A씨는 2013년 11월 인천공항에 도착해 난민신청을 했지만 심사회부 없이 당국의 출국 명령을 받았다. “돌아가면 박해 받을 것”이라며 버틴 A씨는 공항 송환대기실에 구금돼 햄버거로 끼니를 때우고 맨바닥에 자면서 5개월을 지내며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의심의 여지가 있더라도 구체적 판단이 필요할 때는 신청자를 난민심사에 회부해 법의 절차적 보호 아래 심사 받게 해야 타당하다”고 밝혔다. 이 판결은 당국의 상고 포기로 확정돼 A씨는 난민심사를 받게 됐다.
이일 변호사는 “공항 당국의 불회부를 취소한 첫 확정 판결로, 명백한 불회부 사유에 해당되지 않으면 심사기회를 주자는 입법취지를 살린 것”고 평가했다. 그 동안 많은 난민신청자들은 심사기회도 없이 ‘공항의 벽’을 넘지 못하고 송환돼 왔다.
손현성기자 hs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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