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는 이렇게 말하였다 / 이진경 지음

인문학 연구의 끝과 시작은 ‘읽기’다. “서양 철학의 전통은 플라톤의 각주달기에 불과하다”는 저 유명한 화이트 헤드의 선언을 들먹일 필요도 없이, 우리가 흔히 고전이라 부르는 인문학 저서 대다수는 이전 시대 고전들을 당시의 정치 사회 문화적 맥락에서 독창적으로 읽어낸 것들이다.
인문학자 이진경씨의 신작은 그 사상의 젖줄인 마르크스의 저서를 오늘날 한국사회에 대입해 읽어낸다. 죽은 마르크스와 가상의 대화를 통해 사회주의 몰락에 대한 견해와 자본주의 몰락에 대한 이론적 검토, 노동계급과 정치의 상관관계, 노동계급의 계급성에 고찰 등 우리 사회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찾아간다.
국내 대다수 인문학자들이 고전을 정확하게 해독하는 훈고학에 목숨을 걸며 학문을 현실과 동떨어진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시켰다는 점에서, 저자의 마르크스 읽기는 위험하면서도 흥미롭다. 어렵고 딱딱한 철학 저서를 쉽게 소개하는 데 탁월한 재능을 보인 저자는 이번에도 마르크스 사상과 현대 인문학의 주요 키워드를 쉽게 정리해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꾸리에ㆍ364쪽ㆍ1만8,000원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한국 현대건축 평전 / 박길룡 지음

대중문화에서의 한류 열풍 이후 음식, 패션, 미술 등 예술ㆍ문화 전반은 하나의 질문과 마주하게 됐다. ‘한국적인 것은 무엇인가’. 박길룡 국민대 명예교수가 쓴 ‘한국 현대건축 평전’은 이 물음에 대한 건축계의 답변이다. 저자는 한국 현대건축이 통과한 60년의 역사를 한 줄로 꿰며 발생, 변이, 진화의 과정을 세심하게 좇는다. 해방 후 재건의 다른 이름이었던 한국 건축은 김수근과 김중업이라는 두 거장을 통해 양과 질에서 비약적으로 성장한다. 자의식의 부재, 유신정권의 선전물, 지역성과 보편성의 대립이라는 험난한 골짝을 지나 오늘에 이른 한국 건축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은 애정이다. 앞서의 질문에 대해 그는 “우리에게는 야성적이지만 낭만이 있고, 극적이지만 정신적인 문화가 있다” 는 희망찬 답변을 내놓는다. 2005년 출간된 ‘한국 현대건축의 유전자’의 개정증보판으로, 출간 10주년에 맞춰 내용을 일부 손보고 2002~2013년의 이야기를 추가했다. 공간서가ㆍ 440쪽ㆍ 3만3,000원
황수현기자 soh@hk.co.kr
반공의 시대/ 김동춘ㆍ기외르기 스첼 외 14명 지음

오랜 분단국가였던 한국과 독일의 학자들이 두 나라에서 반공주의가 어떻게 뿌리를 내리고 이용됐는지를 연구한 저서다. 반공주의는 공산주의를 배격하고 자본주의를 수호하려는 근본주의 성향의 이념으로 요약된다. 공산주의가 현실적인 안보위협요소였던 한국과 독일에서 보수 독재 정권은 반공주의를 정치자본으로 삼아 권력을 정당화했다. 국민들은 공포심, 복수심, 국가의 강요로 반공주의를 내면화했다. 독재정권의 비판자들조차도 반공을 전제로 자신의 의견을 펼쳤다.
두 나라의 차이는 서독이 나치즘을 공산주의만큼 경계했기에 극우 운동이 활발하지 못했던 반면 남한은 극우주의를 통제할 수단이 없었다는 점에 있다. 한국에서 공산주의의 위협이 사라진 지금도 반공주의가 시장근본주의로 변신해 진보세력을 억압하는 수단으로 사용되는 이유다. 학술서라 쉬 읽히지는 않지만 반공주의의 강력한 영향 아래 있는 한국의 상황을 이해하는 데 유용한 분석틀이 담겨 있다. 안인경ㆍ이세헌 옮김. 돌베개ㆍ532쪽ㆍ2만5,000원
인현우기자 inhy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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