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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관계 나빠지지 않길" 앞뒤 안 맞는 김기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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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관계 나빠지지 않길" 앞뒤 안 맞는 김기종

입력
2015.03.06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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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에 깁스한 채 영장심사 출두 "리퍼트 상처 깊을 줄 몰랐다" 딴청

북한과 연계성 질문엔 단호히 부인 "자신 알리려 이벤트성 사고" 평도

문화운동 하며 많은 재산 탕진, 10여년간 가족·친구와 교류 없어

지난 5일 마크 리퍼트 주한미국대사를 습격해 구속영장이 청구된 김기종 우리마당 독도지킴이 대표가 6일 오후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초동 중앙지법으로 이송되던 중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5일 마크 리퍼트 주한미국대사를 습격해 구속영장이 청구된 김기종 우리마당 독도지킴이 대표가 6일 오후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초동 중앙지법으로 이송되던 중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6일 오후 3시20분쯤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를 습격한 ‘우리마당 독도지킴이’대표 김기종(55)씨가 서울 종로경찰서 출입구에 모습을 드러냈다. 살인미수 등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영장실질심사를 받으러 가는 길이었다.

김씨는 범행 당시 입었던 개량 한복을 착용하고 오른쪽 발에 깁스를 한 채 휠체어를 타고 있었다. 그는 “누구의 지시를 받고 (범행 현장에) 다녀왔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전혀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수사기관에서 북한과의 연계성을 수사한다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말도 안 된다”고 반발했다. 이날 오전 경찰이 김씨의 빈번한 방북 전력과 친북 의심 행적을 문제 삼으며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사실이 있는지 검토하겠다고 발표한 데 따른 반응이었다.

김씨는 조사실에서 막 나올 때에는 잠깐 웃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으나 대부분의 시간은 치아가 다 드러나게 입을 벌린 채로 이를 꽉 깨물고, 미간을 한껏 찌푸린 표정을 지어 보였다. 고통을 참기 힘들다는 것을 대중에게 호소하려는 듯 했다. 실제로 김씨의 부상 정도는 꽤 심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5일 리퍼트 대사를 공격한 직후 주변인들로부터 제압 당하는 과정에서 오른쪽 발목에 골절상을 입었다. 크고 작은 뼈들이 부러져 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태지만, 검거 당일 1시간 가량 응급조치를 받고 경찰서로 돌아와 계속 조사를 받았다. 경찰 관계자는 “부기가 빠지는 대로 수술을 받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영장실질심사는 오후 4시 반 시작돼 1시간 가량 진행된 후 5시45분쯤 끝났다. 경찰과 법원 방호원 20∼30여명이 김씨를 에워싸고 기자들의 접근을 막았고, 김씨도 질문에 일절 답하지 않았다. 김씨의 변호인인 황상현 변호사는 심사가 끝난 뒤 “본인은 그렇게 상처가 깊을 줄 몰랐다며 리퍼트 대사에 거듭 미안하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황 변호사는 “김씨가 최후 진술을 통해 거듭 유감을 표시하며 한미관계가 악화되질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고 덧붙였다.

지인들의 말을 종합하면 김씨는 유복하고 주목받던 유년시절과는 달리 사회생활을 하면서는 경제적으로 궁핍해지고 시민단체 활동이 사람들의 관심을 얻지 못하자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들었을 가능성이 높다. 광주에 사는 김씨의 고교 동창 A씨는 “전남 강진에서 과수원과 정미소를 하는 부잣집 아들로 기억하는데, 문화운동단체인 우리마당을 운영하면서 많은 재산을 탕진했다”며 “일본 대사에게 시멘트를 던져 엄청난 주목을 받았는데, 이번에도 자신의 행동을 널리 알리기 위해 이벤트성으로 사고를 친 것 같다”고 말했다.

김씨는 10여년 이상 가까이 지내던 친구들과도 연락을 끊고 외톨이처럼 지내온 것으로 파악됐다. 또 결혼은 하지 않았으며 부모 형제와도 교류가 거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A씨는 “1년에 1~2차례씩은 광주에서 만났는데 최근에는 교류가 없어 근황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동창생 B씨도 “동창들의 경조사에도 참석하지 않아 기종이의 근황을 아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며 “문화운동을 한 뒤로는 친구들과 교류를 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지인들은 특히 김씨가 우리마당 습격사건과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고생한 이후로 점차 외골수로 바뀌어 갔다고 증언했다. 우리마당 습격사건은 1988년 8월 서울 창천동에 있는 우리마당 사무실에 20대 괴한 4명이 들이닥쳐 남자 직원을 구타하고 여성 직원을 성폭행한 사건이다. 당시 야당인 평민당과 재야 단체들이 진상규명을 요구했으나 진상이 밝혀지지는 않았다.

광주=김종구기자 sori@hk.co.kr

채지선기자 letmeknow@hk.co.kr

김관진기자 spiri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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