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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미국에 온정 기대할 때는 지났다

입력
2015.03.06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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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연합뉴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연합뉴스

벤야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안보 확신범’인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세게 나올 줄은 몰랐다. 그는 3일(현지시간) 미국 의회 상ㆍ하원 합동회의장에서 미국의 이란핵 협상을 거칠게 비난했다. “아주 나쁜 협상이다. 안 하느니만 못하다. 북한 꼴 난다”며 “미국이 우리를 돕지 않는다면 혼자서라도 조국을 지키겠다”고 역설했다.

이스라엘 의사당이 아니라, 그의 뒤로 미국 상ㆍ하원 의장이 앉아있고 대형 성조기가 내걸린 미국 의회에서 한 말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새로운 이야기도 없고 대안도 제시하지 못했다”고 맞받아쳤다. 민주당의 낸시 펠로시 하원 원내대표는 “미국을 모욕하는 연설에 눈물이 쏟아질 뻔 했다”고 토로했다.

미국이 이란과 시도하는 핵 협상은 이란의 완전한 비핵화가 아니라 핵 동결로 핵무기 능력을 저지하는 게 초점이다. 사찰과 검증을 강화해 이란 핵 능력을 평화적 이용으로 유도하자는 것이다. 사실상 이란의 핵 물질 생산능력을 허용하는 것이어서 네탄야후가 ‘장미빛 환상’이라고 비웃은 것이다.

네탄야후의 연설을 보고 느낀 것은 두 가지다. 우리보다 더한 미국의 맹방인 이스라엘의 최고지도자가 어떻게 미국 의회 한복판에서 미국 정부가 가장 공들이는 안보문제를 원색적으로 비난할 수 있을까 하는 것하고, 네탄야후가 이런 말을 할 줄 알면서 자기네 정치의 심장부를 선뜻 내준 미국은 대체 어떤 나라인가 하는 점이었다.

네탄야후가 미국 정부와 얼굴을 붉힌 것은 한두 번이 아니다. 가자지구 유혈사태나 팔레스타인과의 국경선 획정 문제에서도 네탄야후는 오바마 행정부를 거침없이 비난했고, 오바마 대통령도 그와의 불화를 숨기지 않았다.

이스라엘의 극렬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이란과 핵 협상을 계속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란을 북한과 함께 ‘악의 축’으로 몰고, “핵 프로그램 절대 불가”라며 전쟁도 불사하겠다던 미국이 말이다. 미국이 유럽에 배치하려는 미사일방어(MD)망도 이란의 미사일을 저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지 않았나. 이란핵뿐만이 아니다. 시리아 아사드 정권의 화학무기 사용을 ‘레드라인’이라고 강하게 몰아붙였다가 러시아 협상안을 내세워 흐지부지 끝냈고, 리비아 민간인 학살문제에서도 가다피 정권 축출을 놓고 오락가락했다.

미국은 북한이 2ㆍ29 합의에 따른 비핵화 사전조치 약속을 깨고 장거리미사일을 발사하고 핵실험을 강행한 것을 들어 북한과의 대화를 거부하고 있다. 일본과의 과거사 문제에서는 ‘공동책임론’을 내세워 ‘이제 그만 덮고 한미일 공조에 힘쓰자’고 요구하고 있다.

아무리 동맹이 중요하다 해도 자국의 이익을 앞설 수는 없다. 그건 수많은 동맹을 거느린 미국에게도 마찬가지다. 미국이 이스라엘의 안보 우려를 제치고 중동의 지정학적 안정을 먼저 택한 것이나, 북핵 문제를 방치한 채 아시아 재균형 전략에 올인하는 것은 그것이 국익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한미일 3국 공조를 우선 강조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런 미국에 우리의 국익을 관철시킬 수 있는 길은 한가지뿐이다. 원칙과 사실에 입각한 주도적인 외교다. 노무현 정권 당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방한한 콘돌리사 라이스 당시 미국 국무장관에게 “독도문제는 영토문제이기 이전에 역사문제이고 1951년 샌프란시스코 조약에서 미국이 정확히 정리하지 못해 발생한 일이기 때문에 미국이 역사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해 라이스 장관을 당황케 했다. 작년 초 손학규 당시 민주당 상임고문은 미국 캘리포니아의 대학에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 독도 조항이 빠진 이유를 미국은 규명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건 ‘굳건한 한미동맹’이라는 허울좋은 수사를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는 저자세 외교가 아니라 할 말은 하는 당당한 외교다. 웬디 셔먼 국무부 정무차관의 ‘공동책임론’ 발언을 “2차 세계대전 유산의 왜곡과 미국의 이익 사이에 큰 관련이 없다고 보는 미국식의 불편한 사고방식”이라고 한 데니스 핼핀 존스홉킨스대학 한미연구소 연구원의 지적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황유석 논설위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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