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창권 지음
푸른역사 발행ㆍ286쪽ㆍ1만5,000원

남존여비(男尊女卑). 남자는 귀히 여기나 여자는 천하게 대하는 인습이 조선을 관통했다고 여겨진다. 여자는 남자 앞에서 입 한번 제대로 열지 못하고 삼종지도(三從之道)의 삶을 살아야만 했다는 게 상식이다. 과연 성리학을 근간으로 한 조선사회는 일방적으로 여성을 하대하고 부부 사이도 명확한 상하관계로 규정된 것일까.
‘조선의 부부에게 사랑법을 묻다’는 적어도 조선 중기까지는 부부 사이가 어느 정도 수평적 관계였음을 보여준다. 남자들도 적극적으로 집안일을 했고 만약 이를 소홀히 하면 아내의 핀잔을 듣기 일쑤였다.
책에 따르면 남자들이 결혼한 뒤 처가에서 사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부계와 모계가 서로 대등한 관계여서 아들과 딸이 균등하게 상속을 받았고 조상에 대한 제사도 아들딸 구분 없이 돌아가며 맡았다. 완고한 남성우월주의자들이라면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실일 것이다. 책은 사람들의 잘못된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 퇴계 이황과 안동 권씨, 박지원과 전주 이씨 등 10쌍의 조선시대 부부가 사랑하며 살며 빚어낸 사연을 소개한다.
이황의 사례가 가장 의외로 여겨질 만하다. 꼬장꼬장했을 조선 유학의 거두가 여성들에게 사려 깊게 행동했다는 기록은 현대 남성들이 되새겨볼 대목이다. 첫 아내와 사별한 이황은 서른에 두 번째 아내를 맞이하는데 지적 장애를 지닌 여인 안동 권씨였다. 권씨는 어린 시절 아버지 권질이 귀양 갔을 때 정신적 충격을 받아 지적 장애를 지니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황은 권질의 간곡한 부탁으로 권씨와 혼인을 하고 17년 동안 부부의 예를 갖추며 살았다고 책은 전한다. 저자는 국문학 박사로 고려대 교양교직부 초빙교수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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