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행사 일정 등 통보 못 받아 정보수집·돌발 상황 대비 목적
셔먼 발언 후 잇단 반미집회 등 "최근 여론 동향 염두 뒀어야" 지적
5일 발생한 마크 리퍼트 미국대사 피습 사건과 관련, 경찰은 “리퍼트 대사는 경찰의 주요 경호 대상이 아니었다”고 밝혔다. 경호 책임 자체가 미국 대사관에 있다는 것으로 이번 사건이 경찰의 경호 부실과는 무관하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최근 국내 여론의 동향에 경찰이 조금만 촉각을 곤두세웠더라면 피습 개연성을 염두에 둔 사전 대처가 가능했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서울 종로경찰서는 이날 피습 사건 직후 가진 언론 브리핑에서 “리퍼트 대사가 공격을 당한 세종문화회관 세종홀 안팎에 기동대 1개 제대와 정보, 외사 형사들을 배치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날 경력 배치는 ‘경호’가 아닌 ‘정보 수집’과 ‘돌발상황 대비’ 목적이었다. 이 때문에 근접 경호 자체는 당연히 이뤄지지 않았다.
통상은 미 대사관에 파견 나가 있는 경찰 연락관이 신변 보호 요청을 받아 한국 경찰에 전달하면 경비 인력을 파견하는 수순을 밟는다. 하지만 이날은 이런 요청이 없었다. 또 미 대사관은 보안 문제로 대사의 일정을 사전에 알려주지 않았으며 행사 직전에야 경찰에 통보를 했다. 경찰 관계자는 “외교적 결례를 무릅쓰고 요청도 없는 대사를 경호하겠다면서 마음대로 접근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니냐”고 말했다.
경찰은 미국대사를 포함한 외교사절이 경호편람 조항에 규정된 ‘요인 경호 대상자’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경찰청장이 테러나 납치 등 국가안전보장에 중대한 침해가 우려되는 인사 중에 경호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외빈을 정하게 되는데, 역대 미국대사는 포함된 적이 없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안보 관련 정부 주요 인사나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 등 과학계 중요 인물 수십명이 경호 대상이 됐으나 외국 대사가 지정된 사례는 없다. 최근 IS와 관련해 테러 우려가 커지면서 보호 요청이 있기는 했지만 이 역시 사람이 아닌 시설보호 요청으로 미 대사관 건물 외곽에 경력을 배치하는 정도였다.
그러나 도심 한복판에서 외국 대사를 대상으로 흉기 피습이 발생했다는 점에서 경찰이 좀 더 치밀한 경비를 했어야 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최근 “과거사는 한ㆍ중ㆍ일 3국 모두가 책임이 있다”는 웬디 셔먼 미 국무부 차관의 발언으로 미 대사관 근처에서 일부 시민단체들의 집회가 잇따랐다는 점에서 반미 감정에 따른 돌발상황을 충분히 예상할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만약 경찰이 경호 수위를 높였다면 25㎝나 되는 흉기를 든 채 행사장에 들어가는 김기종씨를 입구에서부터 제지할 수도 있었다는 지적이다.
경찰은 당황하는 분위기다. 마침 이날 오전 서울경찰청 산하 전 경비지휘부가 충남 아산 경찰교육원에서 지휘관 워크숍을 하다가 이번 사태를 맞아 한 바탕 소란이 일었다. 경찰 안팎에서는 “미국과의 외교 문제를 생각하더라도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아니냐”는 문책론이 나오고 있다. 2011년 8월 25일 서울 중구 장충동 자유총연맹 앞에서 열린 이승만 동상 제막식 행사에서 시민단체 회원들이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 미국대사의 차량에 물병과 신문지를 던지는 사태가 일어났을 때 중부경찰서 경비과장과 정보2계장이 경질됐던 전례를 거론하는 이들도 있다. 이에 따라 규정상 경찰이 잘못한 것은 없다고 하더라도 사건의 경중을 따져볼 때 책임의 정도와 수위에서 그 때와는 비교가 안 되는 문책이 이어질 것이라는 예상이 무성하다.
경찰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국내 주요 미국 관련 시설, 주한 외교사절, 공ㆍ관저 시설과 요인에 대한 신병보호를 강화했다. 미대사관 경비인력을 기존 1개 중대에서 2개 중대로, 대사관저에도 기존 1개 중대에 2개 소대를 추가로 투입했다. 아울러 오전 10시부터 리퍼트 미대사를 요인 경호 대상자로 지정하고 리퍼트 대사에게 4명, 대사 부인에게 3명의 경찰관을 배치했다. 하지만 이 역시 경찰의 ‘뒷북 관리’라는 지적이다.
남상욱기자 thot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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