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對테러법 위반 우려, 자선단체 계좌 동결 등 몸 사려
美선 테러피해자에 은행보상 판결 "임금지불도 어려워 구호활동 타격"
극단주의 세력의 잇따른 테러가 전세계 자선단체의 인도주의 활동을 위축시키고 있다.
가디언은 5일 영국의 싱크탱크인 해외개발연구소(ODI) 보고서를 인용, HSBC나 UBS, 넷웨스트 등 글로벌 은행들이 최근 영국 기반 자선단체나 국제기구의 자금 이체를 강력히 규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들 은행은 자선단체의 자금이 시리아나 가자, 이라크 등 분쟁지역 내 테러리스트들을 돕는 데 쓰일 수 있다며 계좌를 동결하거나, 송금된 자금을 다시 은행으로 거둬들이는 중이다.
ODI에 따르면 차단된 자금 규모는 수십파운드에서 최대 수백만파운드까지다. 한 자선단체 관계자는 “은행이 자금을 차단해 지난 12개월간 200만파운드(약 33억5,000만원) 상당의 기부금이 전달되지 못했다”고 밝혔다. 또 은행이 이체 관련 규제를 강화하는 바람에 해외 거주 노동자에 대한 임금 지불이 지연되거나 아예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전문가들은 은행들이 지나치게 몸을 사리며 분쟁지역에 대한 송금업무를 까다롭게 하는 이유가 정부가 명확한 대테러 가이드라인을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사라 판툴리아노 ODI 소장은 “영국의 대테러법이 너무 포괄적이다”라며 “대테러법에 따르면 자선단체 기부금은 ‘테러에 사용될지 모르는 자금’으로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영국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 정부들도 규제의 고삐를 바짝 죄는 추세다. 미국 뉴욕 브루클린 연방법원 배심원단은 지난해 9월 사상 처음으로 해외은행이 테러 피해자에 보상 책임을 져야 한다고 평결했다. 당시 배심원단은 요르단 기반의 아랍은행이 2000년 이후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에서 벌어진 자살폭탄테러 24건의 공격 대가로 테러 단체 관계자에 송출된 돈의 계좌이체를 묵인했다며 이같이 결정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산하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도 지난해 조사된 기부금 송금 사례 중 100건 이상이 테러 지원에 쓰였다며 자선단체 기금 추적에 주력하고 있다.
자선단체에 대한 제재가 확산하자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재난구호위원회(DEC)의 리차드 다이 자금 부문장은 “최근의 조치는 은행이 테러 자금과 관련된 업무상 위험을 회피하기 위한 것”이라며 “자선단체와 비정부기구의 구호 활동이 심각하게 타격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앤드류 오브라이언 자선기금협회(CFG) 정책부문장도 “입법가들은 인도주의 활동을 방해하지 않도록 은행 및 자선단체와 협의를 증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신지후기자 h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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