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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향기] 독서다반사(讀書茶飯事)

입력
2015.03.05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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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를 걷다가 한 서점 앞에 잠시 멈춰 섰다. “책 속에 길이 있다” 간판 밑에 커다랗게 쓰인 글이 눈에 띄었고, 때마침 그 앞을 여중생들이 참새처럼 지저귀며 지나갔다. 마치 거대하고 엄숙한 선언처럼 보이는 문장은 나의 학창시절에도 필통이나 책받침은 물론이고 학습 참고서에도 자주 등장했던 글귀였다. 저 아이들도 보았을 텐데, 문득 아이들은 책과 길을 어떻게 연관 지어 생각할까 궁금했다.

책은 아이들이 매고 있는 가방 속의 교과서부터 학습 참고서 뿐 아니라 각종 교양서적과 학술 연구서 등등 그 종류가 다양하다. 길이라는 것도 그 단어가 가진 다의적인 특징 때문에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입시생에게는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는 길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인생의 역경을 헤쳐 나가고, 지혜를 얻는 길일 수도 있다. 결국 우리 주변에는 다양한 책이 다양한 길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독서의 방법도 그만큼 다양하다. 단어의 뜻을 하나하나 음미하며 읽는 정독(精讀), 빠른 속도로 전체적인 내용을 파악하는 속독(速讀), 눈으로만 읽는 묵독(?讀), 많이 읽는 다독(多讀), 일정 분야의 책만 읽는 편독(偏讀), 소리를 내어 읽는 음독(音讀) 등이다. 특히 음독은 암기에 효과적이라고 하는데, 옛날 서당에서 천자문을 소리 내어 읽었던 것이 바로 그런 예이다.

요즘은 필사(筆寫)가 유행하기도 한다. 책을 한 자씩 또박또박 베껴 쓰는 필사는 좋은 문장이나 문체를 익히는 방법이다. 미술에서 작화 훈련을 위해 좋은 그림을 모사(模寫)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필사는 열독(熱讀)으로서 집중력과 기억력을 키우는 데에도 효과적이고 마음을 다스리는 힐링의 방편으로 알려지면서 사랑을 받고 있다.

이처럼 독서의 방법은 다양하다. 하지만 독서의 자세는 일상적이어야 할 것이다. 마치 밥을 먹고 차를 마시듯 보통의 다반사(茶飯事)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물이나 음식을 먹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해지듯이, 독서는 지속적인 읽기가 중요하다.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친다고 했던 안중근 의사의 말씀도 독서의 일상적 지속성을 강조한 것이다.

좋아하는 분야의 책을 골라서 보는 편독은 전문적인 지식에 도달할 가능성이 높지만, 자칫 편향된 지식만을 가질 수 있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자라나는 어린이나 청소년들에게는 잘 권하지 않는 방법이다. 지식은 다양한 맥락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하면 골고루 읽는 있는 것이 좋다. 성장기의 아이들이 편식을 하지 않도록 고른 음식 섭취를 권장하는 것과 같다.

또한 아이들에게 음식을 꼭꼭 씹어 먹으라고 하는데 시간에 쫓기어 음식물을 대충 넘기다 보면 소화도 잘 안될뿐더러 음식물이 가지고 있는 영양소를 제대로 흡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책을 정독해서 읽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시간에 쫓기어 속독을 하다 보면 책 속의 문장과 단어가 가지고 있는 의미를 다 소화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쳐 버리는 경우가 많다. 음식물을 꼭꼭 씹어 먹듯이 글을 음미하며 읽는 것이 필요하다.

봄과 함께 새 학기도 시작되었다. 학생들이 성적을 올리기 위한 길로서 학습과 관련된 글 읽기에만 매달리는 것은 편식과 같다. 다양한 영양소를 가진 음식이 우리의 몸을 성장시키는 힘이 되듯이 매일의 독서를 통해 마음과 영혼을 살찌워야 할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일상적이고 지속적인 독서다반사가 필요한 것이다.

사진 한 장이 기억에 남는다. 1940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을 당했던 런던의 한 서점을 찍은 사진이다. 서점의 중앙 내부는 부서진 지붕, 무너진 대들보와 각종 잔해로 아수라장인데, 신기하게도 양쪽 벽의 서가는 멀쩡하게 책이 꽂혀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몇몇의 중절모를 쓴 사람들이 책을 고르는 모습이다. 폐허 속에서도 서점에 들러 책을 찾는 모습이 평범한 일상을 느끼게 해준 사진, 독서다반사가 우리의 밝은 미래를 만들어 주리라 믿는다.

안진의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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