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인하가 경제 불쏘시개라는데
가계부채 증가 속도 너무 가팔라
고정금리 전환 등 후속 조치 필요

마른 장작에 불을 붙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장작 위에 짚이나 잔가지를 얹어놓고 종이에 불을 붙여 아궁이에 던져 버리면 그만이다. 그런데 젖은 장작에 불을 붙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휘발유나 경유를 뿌려야 가능하다.
정덕구 니어재단이사장의 표현대로 지금 우리 경제는 ‘젖은 장작’에 비유될 수 있다. 각종 경제지표가 온통 빨간 불이다. 투자도 부진하고 수출도 줄어들고 있다. 물가는 디플레이션(장기적인 경기침체 속 물가하락)을 우려할 수준이다. 경상수지가 35개월 연속 흑자라지만 수입이 줄어들면서 나타나는 전형적 불황형 흑자다. 휘발유라도 끼얹어서 불을 붙여야 할 판이다.
그래서 경제 주체들이 한국은행을 쳐다본다. 금리인하가 휘발유처럼 경제의 불쏘시개가 되지 않을까 기대하는 눈치지만, 한국은행은 가계부채의 과다한 증가를 걱정해 선뜻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다. 금리를 인하한다고 해서 투자가 곧바로 늘어날 리도 없어 경기부양효과도 미미하다. 특히 미국이 금리인상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는 상황이라 당장은 금리인하 카드를 쓰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정부는 금리인하를 종용하는 분위기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4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린 국가경영전략연구원의 수요정책포럼 강연에서 “저물가 상황이 이어져 디플레이션 우려 때문에 큰 걱정을 하고 있다”면서도“디플레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디플레이션 우려는 있으나 아직 진입한 단계는 아니라는 말인데, 뭔가 아귀가 맞지 않는다. 그는 또 “금리가 인하되면 가계ㆍ기업대출이 늘어나는 것이 정상”이라며“가계부채 총량이 늘어나지 않는 수준에서 관리되고, 자산시장이 받쳐주면 가계부채 리스크는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금리를 인하해도 가계부채는 정부의 관리가 가능한 범위에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가계대출 관리도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소득증가율이 몇 년간 정체상태에 있는 상황에서 가계부채만 늘어나면 큰 일이다. 가뜩이나 최근 들어 전세가격이 급등하면서 많은 이들이 빚을 얻어 집을 사는 바람에 가계부채 규모가 급속히 커져가고 있는 상황이다. 가계부채가 이미 1,000조원을 넘어선 상황에서 증가속도가 너무 가팔라 위험수위에 빠르게 근접하고 있다.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는 공저 한국경제, 벽을 넘어서에서 ‘부채 디플레이션(debt deflation)’ 개념을 설명한다. 한 마디로 집을 구입하면서 빌린 부채는 그대로인데 집값이 하락, 순자산이 감소하는 현상이다. 일본의 장기불황 원인도 부채 디플레이션에서 찾는 다. 집값이 하락하면 가계소비가 위축되고 경기가 침체되며, 이는 다시 집값을 하락시키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따라서 가계부채가 늘어난 상황에서 집값이 떨어지면 매우 위험한 상황이 된다는 것이다.
2012년 말 기준 처분가능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을 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7개 회원국 평균은 137.8%인 데 비해, 우리나라는 159.8%로 22%포인트나 더 높다. 2013년 말에는 160%를 넘어섰고, 지난해 3분기엔 163.6%에 이른다. 이대로 가면 2017년에는 200%에 육박할 것이라고 한다. 성장률이 둔화하면서 소득증가가 부채증가를 따라잡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정근 교수는 “가계부채를 너무 옥죄면 사채시장으로 내모는 풍선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며 “가계가 갚을 수 있는 수준 이하로 가계부채를 관리하는 것이 정부 정책의 핵심”이라고 조언한다. 그는 “중장기적으로는 일자리를 창출해 가계의 부채 상환 여력 자체를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박용주 국회예산정책처 경제분석실장은 “한국은행이 금리를 추가 인하하면 가계부채가 더욱 늘어날 것”이라며“다만, 금리인하를 하더라도 가계대출을 변동금리에서 고정금리로 대거 전환하는 등의 조치가 뒤따라야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정책을 추진하다보면 장단점이 동전의 양면처럼 나타나기 마련이다. 특히 디플레이션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금리인하는 불가피한 측면이 없지 않지만, 가계부채 증가 등의 위험성에 노출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 적절한 장치가 동반되어야 할 것이다.
조재우 논설위원 josus6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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