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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ㆍ25 때 1000여명 구한 '전쟁 고아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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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ㆍ25 때 1000여명 구한 '전쟁 고아의 아버지'

입력
2015.03.04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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딘 헤스 美 공군 예비역 대령 별세

6·25전쟁 중 고아를 안고 있는 헤스 대령. 공군 제공
6·25전쟁 중 고아를 안고 있는 헤스 대령. 공군 제공

6ㆍ25전쟁 당시 1,000여명의 고아를 구해 ‘전쟁고아의 아버지’로 불리는 딘 헤스 미 공군 예비역 대령이 3일 고령으로 별세했다. 98세.

4일 한국 공군에 따르면 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 전선에서 P-47 전투기 조종사로 활약 후 전역했던 고인은 6ㆍ25전쟁이 발발하자 미 공군 전투조종사로 다시 입대했다. 1950년 6월 중순 미 공군에서 지원한 F-51 무스탕 전투기 10대를 한국 공군에 인도하기 위해 창설한 부대를 맡아 한국 공군 전투기 조종사들을 훈련시켰다. 고인 자신도 50년 7월부터 1년간 250여 회 출격해 북한군과 맞서 싸웠다.

공군 관계자는 “당시 참전 미 조종사는 100회 출격하면 비전투지역인 일본이나 미국으로 전출하는 게 일반적이었다”며 “고인은 전투기 조종 교육을 통해 항공작전의 불모지였던 한국 공군을 비약적으로 성장시켰다”고 말했다. 고인의 전용기인 F-51D 무스탕 18번기에는 그의 좌우명(By Faith, I Fly)을 한글로 번역한 ‘신념의 조인’(信念의鳥人)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이 글귀는 이후 한국 공군 조종사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특히 고인은 50년 말 중공군이 서울로 물밀듯이 내려오자 C-47 수송기를 동원해 동료들과 1,000여명의 전쟁고아들을 제주도로 무사히 피신시켰다. 그가 전쟁고아의 아버지로 불린 이유다. 56년 미국으로 돌아간 뒤 한국 고아 소녀 한 명을 입양했고 20여 년간 6ㆍ25 전쟁고아들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다. 우리 정부는 그의 공적을 기려 무공훈장과 소파상 등을 수여했다.

고인은 6ㆍ25 전쟁 60주년인 2010년 재출간된 ‘신념의 조인’이라는 제목의 책을 통해 “제일 마지막 차례의 어린이가 C-47 수송기 안으로 걸어 들어가 문이 닫히는 순간 내가 느꼈던 그 지극한 감사와 안도감은 내 평생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당시를 회고했다.

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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