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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건강 지킴이 ‘부럼’

입력
2015.03.04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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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따스한 정을 느꼈던 설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 해 중 가장 크고 밝은 달이 뜨는 정월대보름이다. 설날이 가족과 집안의 명절이라면 정월대보름은 마을의 명절이라고 한다. 그래서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 보름달을 보며 소원을 빌고, 다리밟기, 쥐불놀이, 달맞이, 고싸움 등 모두를 위한 흥겨운 행사를 했나 보다. 특히 어릴 적 정월대보름 즈음에 마을 농악대가 집집을 돌며 즐겁게 놀고 축원해주는 지신밟기는 잊을 수가 없다.

정월대보름에는 다양한 세시풍속과 음식을 통해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한다. 지금도 여러 풍속이 있지만 이는 시간이 흐르면서 많이 줄어든 것이라고 한다. 게다가 정월대보름의 시작이 신라시대부터라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대보름에 매년 으레 먹는 음식에도 이런 오랜 역사와 연관된 이런저런 의미가 담겨 있다.

대보름 음식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찹쌀, 조, 수수, 팥, 콩 등을 섞어 오곡밥을 지어 먹는 것은 액운을 쫓고 한 해의 풍요한 곡식과 행복, 안녕을 기원하는 의미가 있다. 부럼깨기는 이를 튼튼하게 하고 피부에 부스럼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묵은 나물을 먹는 것은 더위를 먹지 않도록 하는 의미가 있는데, 겨우내 부족했을 섬유질과 무기질 성분을 보충하기 위해서다.

정월 대보름날 아침 일찍 일어나 먹는 ‘부럼’은 잣, 호두, 밤, 땅콩 같은 견과류를 말한다. 어원은 예부터 이런 종류를 통틀어 ‘부름’이라고 불렀다는 설과, 깨물어 부스럼이 나지 말라는 뜻에서 따와 ‘부럼’이라 했다는 설이 있다.

부럼깨기는 견과류를 나이수대로 깨문다. 부스럼이 나지 말라는 것은, 아마도 영양 상태가 좋지 않아 피부에 버짐이 피던 옛날 영양가 높은 견과류를 먹고 피부병에 걸리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그럼 부럼은 단지 피부병에만 좋은 것일까?

잣은 약 65%가 지방질이며 독특한 풍미를 지녔다. 잣에 함유된 지방은 주로 올레인산, 리놀레인산 등의 불포화지방산이다. 불포화지방산은 피부를 곱게 할 뿐 아니라 혈압 저하, 항염증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또 땅콩에 비해 철분이 많이 함유돼 있어 빈혈 예방에도 좋다. 최근 한 연구에서는 잣기름이 비만을 억제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했다. 잣기름은 식욕억제호르몬인 렙틴(leptin)의 분비를 촉진해 식욕을 억제한다. 현대인의 만병의 근원인 비만을 예방할 수 있는 천연식욕억제제라고 해도 될 만하다.

호두는 폐의 기능을 개선시키고 천식, 기침, 이뇨 등에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심혈관계 건강 개선 효과가 있어 심혈관 질환 예방에 도움을 줄 수 있다. 또 갈릭산이 함유돼 있어 면역 반응에서 알레르기 염증 반응을 완화하는 역할도 한다고 한다. 유럽식품안정청은 호두 30g을 섭취하면 혈관의 탄력성을 개선시키는 데 도움을 준다고 발표한 바 있다.

밤은 아미노산, 지방산, 칼륨, 인, 칼슘 등의 무기성분, 비타민 B1, 비타민 C 등이 풍부하게 함유돼 있다. 과육에는 갈릭산이 다량 함유돼 있어 항산화 효과도 높다. 또 대식세포를 활성화시킴으로써 면역 기능을 증강시켜 준다. 밤은 덜 익은 것 보다는 수확해서 시간이 경과된 것을 먹는 것이 좋다. 밤에 있는 영양성분 함량은 시간이 지날수록 증가하기 때문이다. 미숙과에는 포화지방산의 함량이 높으나 수확기나 저장기의 밤에는 포화지방산의 함량이 급격히 감소하고 몸에 좋은 불포화지방산의 함량이 높아진다. 이처럼 무심코 먹었던 정월대보름 부럼 안에는 건강을 지켜주는 효능이 가득 담겨 있다.

요즘은 아몬드, 캐슈너트, 피스타치오 같은 수입 견과류도 즐겨 먹는다. 이 때문에 국내 임산업계가 겪는 어려움도 적지 않다. 이번 정월대보름에는 우리 임산물로 신토불이(身土不二)를 실천하고 건강도 챙겨 한 해의 안녕을 기원해 보자.

남성현 국립산림과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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