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IMF 이후 자살률 3배 증가
65세 이상은 일본의 4배 넘어
1997년 외환위기는 한국 경제에만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었다. 이듬해 3월 자살로 숨진 성인 숫자는 교통사고 사망자를 앞섰다. 이후 자살자는 지속적으로 증가해 외환위기 이전 인구 10만명 당 10.8명이었던 자살률이 2013년 28.5명으로 약 세 배가 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자살률은 12.1명으로 한국의 절반도 안 된다. 자살률이 높다는 일본(20.9명)과 폴란드(15.7명)에 비해서도 압도적으로 높은 수치다.
한국에서 자살이 늘어나는 이유는 뭘까. 그 원인과 해법을 찾기 위해 정신과 의사, 목사, 교수 등 각계 인사가 모여 만든 비영리민간단체가 있다. 2013년 설립된 자살예방행동포럼 ‘라이프(LIFE)’다.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수하동 페럼타워에는 주말 낮인데도 라이프의 올해 첫 강연을 듣기 위해 150여명이 넘는 시민들이 모였다. 이번 강연의 주제는 ‘가족의 소중함’. 이날 행사는 유방암에 걸린 후 이를 가족에 대한 사랑의 계기로 바꿔 두 딸을 입양했지만 암이 뼈로 전이되면서 투병중인 주부 백영희씨, 청소년들에게 가족의 사랑을 전하는 동화작가 오선화씨의 강연과 SBS오디션 프로그램 케이팝스타 시즌3 출신인 허은율양의 공연으로 진행되면서 참가자들의 눈시울을 붉혔다.
라이프를 이끄는 이명수 서울시 정신보건센터장은 이날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우리나라도 경제적 이유로 인한 자살인 이코노사이드(‘economy’와 ‘suicide’의 합성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며 “문제는 이전보다 나, 남보다 나와 비교했을 때 상대적 박탈감을 크게 느끼고 우울하게 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 문제가 가장 큰 스트레스의 요인이 되는 대인관계에 영향을 미치게 되고, 대인관계 가운데서도 가족들의 말 한마디 여파가 크다는 것이다.
한국의 자살률이 지금과 비슷하던 때가 과거에도 있었다. 박정희 개발독재 시기다. 경제만 우선하는 압축 성장과정에서 공동체는 급격히 와해했지만 그 충격을 보완해줄 사회안전망은 빈곤하기 짝이 없던 시절이다. 자살률은 구조적으로 한국이 여전히 그런 사회에서 한걸음도 발전하지 못했거나 다시 그런 사회로 되돌아가는 방증으로 볼 수 있다.
이 대표는 한국인 자살률 증가에서도 유난히 두드러진 특징으로 “노인 자살, 이미 상당수 퇴직한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 중장년층 남성의 자살이 늘고 있다”는 점을 꼽았다. 65세 이상 노인의 10만명당 자살률은 80명 이상으로 우리 보다 노인 인구 비율이 높은 일본의 네 배 이상이다.
최근 잇따라 발생하는 일가족 자살에 대해 이 대표는 “동반자살이 아니라 살해 후 자살이라는 표현을 쓰는 게 맞다”며 “이 험한 세상에 남겨두고 갈 수 없다는 자기중심적 사고방식에서 기인한다”고 말했다. 그는 “수능비관자살 같은 표현도 자제해야 한다”며 “시험을 잘못 봤다는 기준이 다 다른데 자살한 학생보다 시험점수가 낮은 학생 입장에선 나도 죽어야 하나 생각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60대 실직가장 자살도 마찬가지”라며 “실직했다고 해서 다 자살한 건 아닐 것인데 또 다른 실직자들에게 여파를 미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우리는 가족이 항상 옆에 있을 것으로 여기기 때문에 소중함을 잊을 때가 많습니다. 가족은 제일 가깝기도 하지만 또 쉽게 상처를 주고 받을 수 있죠. 그래도 가족이 우리에게 살아갈 힘이 되어준다는 것을 생각해보았으면 합니다.” 이 대표는“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힘들게도 하는 게 말 한마디”라며 “가족, 친구 등 주변에서 하는 말과 행동에 더 집중하고 관심을 기울이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고은경기자 scoopk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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