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드래프트 좋은 신인 못 데려와 부족한 전력에 '분업 배구' 하는 것
삼성화재와 함께 올 시즌 배구 3강으로 불리던 대한항공과 현대캐피탈이 씁쓸한 봄을 맞이하게 됐다. V리그 출범 이후 매년 봄 배구 개근생이던 현대캐피탈과 8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던 대한항공이 올해는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지난 시즌 ‘열등생’이었던 한국전력과 OK저축은행이 살아남는 ‘이변의 드라마’ 속에 신치용(60) 삼성화재 감독만이 유일하게 자존심을 지켰다.
매번 하는 ‘일상 같은’ 우승이지만 신 감독은 이번 시즌만큼은 남다르다고 말한다. 하위팀에게 우선 지명권을 주는 신인 드래프트 제도대로라면 지난 시즌 하위팀이 순위표 위로 올라 가는 게 정상이라는 것이다. 신 감독은 “OK저축은행과 한전은 이해가 되는데 우리 팀이 3강 안에 자리하고 있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 역순 드래프트는 상위팀이 내려가고 하위팀 올라가게 하는 선수 선발제도 아닌가. 현대캐피탈, 대한항공, 삼성화재가 오래 머물렀지만 변화가 있는 게 당연하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신 감독은 새 시즌 때마다 “쓸 선수가 없다”는 말로 상대팀의 신경을 긁는다. 좋은 신인 선수들을 다른 팀에 내주고 나면 모자란 전력으로 싸움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신 감독은 정규리그 우승을 결정 지은 날까지도 “마음에 드는 선수를 우선 순위로 못 뽑으니 부담이 가중된다. 엄살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엄살로 끝났다면 11시즌 중에서 삼성화재가 7시즌이나 정규리그 챔피언에 오르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신 감독은 “나는 내 방식대로 싸운다”고 힘줘 말했다. 그는 “좋은 선수를 많이 데려오면 전력이 두터워지는 것이지, 전력이 높아지는 것이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선수가 많아지면 사공만 많아질 뿐, 팀의 조직력이 향상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신 감독의 지론은 부족한 전력이라도 각자의 역할을 나누는 ‘분업배구’로 승리한다는 것이다. 그는 “감독이라면 성적을 내는 것이 필수다. 삼성화재의 배구를‘몰빵 배구’라고 비난하지만 선수 구성원이 좋을 때와 좋지 않을 때 쓸 수 있는 방법이 따로 있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감독은 무조건 승패로 말한다는 것이 신 감독의 설명이다.
우승팀에 오면 우승팀 선수답게 리빌딩하는 것도 삼성화재 우승의 비결이다. 용병 기용에 능하기로 이름 난 신 감독은 “삼성에서 뛴 안젤코(크로아티아), 가빈(캐나다), 레오(쿠바) 모두 다른 팀 테스트에서 버려진 선수들”이라고 말했다. 어떤 외국인 선수가 오더라도 삼성화재의 색깔을 입히는 것이 신 감독의 무기다.
국가대표팀까지 14년 간 신 감독의 제자였던 김상우 KBSN 해설위원은 “신 감독의 리더십은 ‘우승’이라는 성과에서 나온다. 한번 우승을 해본 선수들은 그 맛을 알기 때문에 관성처럼 신 감독을 믿고 따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규리그 우승을 결정 짓는 3일 대한항공전을 앞두고 신 감독은 “오늘 이기면 내일 선수들에게 휴식을 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내일 가봐야 안다”는 유광우(30)의 전언처럼 다음날 신 감독은 선수들에게 이렇게 외쳤다. “오전에는 보강훈련과 웨이트 트레이닝을 진행한다. 그게 프로야!”
이현주기자 memor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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