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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처음 얼마 동안/ 보행의 경계심을 늦추는 법이 없지만, 곧 남들처럼/ 안개 속을 이리저리 뚫고 다닌다. 습관이란/ 참으로 편리한 것이다”기형도 시인의 시 ‘안개’의 저 구절은 두어 행 건너 이렇게 이어진다. “가끔씩 안개가 끼지 않는 날이면/ 방죽 위로 걸어가는 얼굴들은 모두 낯설다. 서로를 경계하며/ 바쁘게 지나가고, 맑고 쓸쓸한 아침들은/ 그러나 아주 드물다.”
시인은 익숙한 것들이 지니는 무서운 일상의 장악력을 저렇게 썼다. 편리란 실은 무서운 것이란 말을 더 크게 하고 싶어 그는“습관이란 참으로 편리한 것”이라 썼을 것이다. 그의 안개처럼 ‘우리’에게도 저마다의 안개가 있고, 맑고 쓸쓸한 아침들은, 서글프게도 드물다. . 이틀 뒤(3월 7일)가 시인의 기일이다.
겨우내 젖어 언 땅이 몸을 풀며, 뜨물 같은 안개를 잔뜩 뿜어 놓았다. 3일 미국 일리노이 주의 한 들판. 해가 뜨고 안개가 걷히면 저 풍경도 조금은 소란스러워질 테고, 거기 기형도가 말한‘공장의 검은 굴뚝’이 다른 형상으로 서 있을지 모른다.
최윤필기자 proose@hk.c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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