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부 비과세·감면 축소 공약 불구 조세특례 항목 53개 중 7개만 종료
증세논의 단계선 소득에 비중, 법인세·소득세 우선 손질해야
2006년 56조원에 불과했던 복지 예산은 10년이 채 안 돼 100조원을 돌파했다. 올해 복지 예산은 115조원을 넘어선다. 그런데 들어오는 세금은 4년 연속 목표치에 미달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정부 여당에서도 증세의 필요성에 대해 과거보다 전향적인 입장으로 변하고 있다. 이제 증세는 선택이 아닌 불가피한 현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고민해야 할 것은 우선순위다. 증세에 대한 원칙적인 합의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누구를 대상으로 어떤 세금부터 얼마나 올릴 지에 대한 방법론이다. ▦특정 세목 조정이 먼저인지 특례조항 손질이 먼저인지 ▦직접세와 간접세 중 어느 것을 먼저 손대야 하는지 ▦개별 세목 중에서는 증세 순서가 어떻게 되는 지 등에 대한 합의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많은 전문가들은 이를 위해선 먼저 현 정부의 대선 공약으로 거슬러갈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증세의 첫 단계는 비과세ㆍ감면 등 특례조항 정비여야 한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27조원에 달하는 복지확대 공약 재원 마련을 위한 최우선 과제로 세법의 예외조항에 해당하는 비과세ㆍ감면 제도를 대폭 축소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실상은 용두사미에 그쳤다. 작년에 비과세ㆍ감면으로 걷지 못한 세금은 32조9,810억원에 달했다. 지난해 말 일몰이 예정됐던 조세특례 항목 53개 중 7개만이 종료됐고, 특히 감면액 상위 10대 항목 중 폐지된 것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6개 항목이 신설되면서 실제 세수 증대 효과는 1,231억원에 그쳤다.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책대학원 교수는 “박근혜 정부가 지하경제 양성화에서 기대만큼 큰 재원 마련하지 못하면서 이른바 담뱃값 인상 등 소위 ‘꼼수 증세’에 나서고 있다”며 “비과세ㆍ감면 혜택의 상당 부분이 대기업이나 고소득층으로 돌아가는 만큼 제도를 정비한 후에 증세 논의를 해야 국민들의 저항이 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본격적인 증세를 시작한다면 간접세보다 직접세 인상이 우선이란 의견이 우세하다. 간접세는 부가가치세와 개별소비세, 교통세, 주세 등이 있고, 직접세는 소득세와 법인세, 상속·증여세, 종합부동산세 등으로 구성된다. 간접세는 통상 소득이 아닌 소비에 비례세율로 부과되기 때문에 소득대비 부담세액의 비율이 저소득층에 높고 역진성이 있어 소득불평등을 악화시킨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간접세 비중이 2011년 기준 49.7%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보다 10% 포인트 이상 높다. 여기에 올해 담뱃값 2,000원 인상으로 간접세 비중은 50.6%에 이를 전망이다. 홍헌호 시민경제사회연구소장은 “현 조세제도는 직접세와 누진세 비중이 낮고 간접세와 역진세 비중이 크다”며 “조세의 소득재분배 기능이 매우 낮은 구조”라고 지적했다.
직접세를 인상하는 경우 법인세와 소득세 중 어떤 것을 먼저 손을 대야 하는지를 두고는 양론이 팽팽하다. 법인세를 우선 인상해야 한다는 쪽은 이명박 정부 당시 법인세 최고세율을 25%에서 22%로 인하한 것을 주요 논거로 제시한다. 상당수 기업들이 감면 효과를 누려온 만큼 이를 되돌리는 것이 먼저라는 것이다. 김성진 민변 민생경제위원장은 “2012년 매출액 상위 10대 기업의 실효법인세율은 13%로 대기업 평균인 17.3%, 중소기업 평균 13.3%보다 낮은 수준”이라며 “법인세 인하 혜택이 소수 재벌 기업에게만 돌아가고 있는 만큼 이를 정상화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소득세 증세가 선행돼야 한다는 쪽은 전체 세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소득세 규모가 국내총생산(GDP)의 3.8%(2011년 기준) 수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8.5%에 비해 낮은 편인 만큼 증세 여력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반면 법인세는 주요국에 비해 전체 세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편이다. 안창남 강남대 교수는 “일단 소득세율을 조정하는 동시에 법인세율을 인상해 복지재원을 마련하고 부족하면 재산세를 올린 후 마지막으로 부가가치세 세율 인상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술과 유해식품 등 교정효과가 있는 분야에 대해선 과세 원칙에서 우선 순위를 둬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박기백 서울시립대 박기백 교수는 “소득세와 법인세 증세한 다음 술과 유해 식품 등에 대한 과세를 할 필요가 있다”며 “전력 등 에너지 분야도 사회적 비용을 고려해 과세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환구기자 red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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