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모(67) 할머니는 지난달 11일 경기 용인에 있는 A골프연습장을 찾았다가 반지 하나를 잃어버렸다. 씻기 전 목욕탕 한 쪽에 잠시 빼놓은 걸 깜빡 하고 그대로 나와버린 것이다.
반지는 35년여 전인 1980년 남편이 선물해 준 할머니의 ‘보물 1호’. 20대 때 백년가약을 맺은 남편이 10여 년이 흘러 뒤늦게 마련해 준 결혼반지였다. 황 할머니는 숱한 경제적 위기 속에서도 이 반지만은 처분하지 않고 고이 간직해왔다. 그런 반지를 잃어버렸으니 할머니의 속이 편할 리 없었다. 다음날 아들이 경찰에 신고했지만, 고작 반지 하나를 찾는데 경찰이 발벗고 나서줄지도 걱정이었다.
음식도 제대로 넘기지 못할 정도로 속앓이를 한 황 할머니에게 지난 23일 뜻밖의 소식이 전해졌다. “반지를 찾았다”며 경찰이 연락을 해온 것이다. 용인동부서 이성준(43) 경위와 옥동한(31) 경장이 발로 뛴 결과였다.
신고를 접수한 이 경위 등은 할머니가 목욕탕에 들어간 시간대(오후 2시 22분~오후 3시) 골프연습장 폐쇄회로(CC)TV를 확인, 드나든 이들의 신원을 파악하고 일일이 접촉했다. 곧 경찰 수사가 시작됐다는 소식이 회원들 사이에서 퍼졌고 반지를 가져간 박모(50ㆍ여)씨가 10일 만에 자수한 것이다.
지난 삶이 오롯이 녹아있는 반지를 다시 손가락에 낀 황 할머니는 건강을 되찾았다. 황 할머니의 아들은 “힘든 여생을 사시면서도 결혼반지만은 포기하지 않으셨기에 반지에 대한 어머님의 애틋함이 컸다”며 “경찰이 우리 가정의 소중한 추억까지 일깨워줬다”고 했다.
한편 경찰은 박씨를 절도 혐의로 입건,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송치했다고 2일 밝혔다. 용인동부서 심동수 형사과장은 “황 할머니는 선처를 요청했으나 절도죄는 반의사불벌죄가 아니어서 원칙대로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유명식기자 gij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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