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 타임으로 일하면서 연봉 15,000달러(약 1,600만원)도 안 되는 돈으로 가족을 부양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한번 ‘해 보세요(Try it)!’”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국정 연설에서 최저임금 인상에 반대하는 의원들을 향해 이렇게 일갈했다. 그는 시간당 법정 최저 임금(7.25달러)을 10.10달러로 올리는 법안 통과를 추진 중인데, 임금이 올라야 소비도 늘어 경기 선순환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독일과 중국도 내수진작을 위해 최저임금 인상에 나서고 있고, 일본 아베 정권도 대기업에 임금인상을 독려 중이다.
▦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임금이 새롭게 주목 받고 있다. 임금은 기업에겐 비용이지만 근로자에겐 생계의 원천이다. 임금 인상은 기업 부담을 증가시켜 투자와 수출에 나쁜 영향을 주기도 하지만, 총수요 확대로 민간 소비를 촉진시키는 측면이 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2012년 ‘임금 인상에 기반한 성장은 안정적이고 지속적’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임금 주도 성장론을 제기했다. “(기존의 기업 중심) 이윤 주도 성장이 세계 경제의 주기적 위기를 불러 왔다”며 “이제 임금을 높여 성장을 이끌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 최경환 경제팀이 지난해 가계 소득증대 세제 방안 등을 내놓은 것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치 않았다. 하지만 현재까지 별 성과가 없고, 최근 기업투자 활성화로 방향을 틀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한국의 실질 경제성장률은 3.3%에 달했으나 근로자 실질임금 상승률은 1%대 초반에 그쳤다. 이른 바 ‘소득 없는 성장’구조가 고착되면서 야당을 중심으로 소득 주도 성장론을 외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 물론 반론도 적지 않다. 한국처럼 수출로 먹고 사는 소규모 개방경제에 과연 맞는가, 오히려 인건비 상승은 기업 경쟁력 악화로 이어져 투자와 일자리만 줄일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가계부채가 1,000조원이 넘는 현실에서 소득이 조금 는다고 소비 증가로 성장을 견인할지에 대한 회의론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수십 년간 이어져 온 성장제일주의에 비견할 만한 새로운 담론이라는 점,‘성장이냐 분배냐’는 이분법적 주장에 비해 한결 업그레이드된 논리라는 점에서 귀 기울일 만하다. 치열한 논쟁을 통해 현실성 있는 담론으로 거듭 나기를 기대한다.
박진용 논설위원 hu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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