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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으로 한국 읽기] 백날 준비해봐야

입력
2015.03.02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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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질적 통일 준비에 매진하겠단 정부 선언은 교언이다. 실제 하는 일이라곤 없기 때문이다. 상대가 무너지길 기다릴 뿐이다. 북한 인권 개선은 대화와 협상의 결과이지 전제가 아니다. 마주앉기 싫단 뜻이다. 사진은 지난해 10월 청와대에서 열린 제2차 통일준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는 박근혜(왼쪽 세 번째) 대통령. 오로지 준비에만 여념이 없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실질적 통일 준비에 매진하겠단 정부 선언은 교언이다. 실제 하는 일이라곤 없기 때문이다. 상대가 무너지길 기다릴 뿐이다. 북한 인권 개선은 대화와 협상의 결과이지 전제가 아니다. 마주앉기 싫단 뜻이다. 사진은 지난해 10월 청와대에서 열린 제2차 통일준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는 박근혜(왼쪽 세 번째) 대통령. 오로지 준비에만 여념이 없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어떤 통일은 재앙이다. 내연하던 갈등을 강제 통합은 종내 폭발시킨다. 자연스러워야 한다. 일방 준비는 무위다. 안 일어난다, 아무 일도. 되레 위험만 가중된다. 대화엔 전제가 없다.

“예멘은 무정부 상태다. 대통령은 쫓겨났고, 정부는 없다. (…) 공권력이 사라지면서, 각자도생의 아비규환이 펼쳐지고 있다. (…) 예멘은 어떻게 망국에 이르렀을까? 통일이 원인이다. 예멘은 한번은 합의로, 다른 한번은 전쟁으로 통일을 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합의 통일’의 후유증이 ‘전쟁 통일’을 불렀다. (…) 누가 ‘전쟁에 의한 통일’을 말하는가? 그런 통일은 통일이 아니다. (…) 폭력은 합의보다 쉽고 효율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폭력은 폭력을 낳을 뿐이다. (…) 분단 시대, 북예멘이나 남예멘 모두 통일이 희망이었다. (…) 그러나 통일은 악몽 그 자체였다. 폭력이 줄지 않고, 경제도 나아지지 않았으며, 주권이 국민에게 돌아가지도 않았다. 법적으로는 통일이 되었는데, 국가 혹은 민족이라는 정체성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사람과 사람 사이, 부족과 부족 사이, 그리고 지역과 지역 사이 분열의 골이 더 깊어졌다. ‘질서의 공백’ 지대로 중동의 모든 강경파들이 모여들었다. (…) 사람들이 납치되고, 정치인은 암살되고, 거리에는 자주 폭탄이 터진다. 이런 통일,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우리는 흔히 통일 사례로 독일을 말한다. 그러나 정반대인 예멘 사례도 있다. 예멘의 통일 이후 20년은 통일만 되면 새로운 미래가 펼쳐지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어떤 통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정말 중요하다. 우리 안의 민주주의와 우리 안의 인권과 우리 안의 화해를 부정하면서, 어떻게 통일이 희망일 수 있을까? 예멘처럼 그것은 망국의 길이다. 대한민국에서 ‘통일’은 죽은 말이 되었다. 증오를 담은 삐라를 뿌리면서, 5ㆍ24 조치를 유지하면서 ‘통일대박’을 말할 수 있을까? ‘아무나 하는 자리’로 전락한 통일부는 더 이상 현실이 아니라, 가상의 영역에서 ‘통일 준비’를 한다. 남북관계 개선의 가능성이 사라지고, 남북 교역은 제로이며, 경쟁적으로 군비 증강에 나서는 현실에서 통일은 더 이상 살아 있는 말이 아니다. (…) 통일은 준비하는 것이 아니다. 만들어가는 것이다. 통일은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다. 둘이 셋이 혹은 여럿이 어울려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통일은 폭력이 아니다. 차이를 인정하고 공통점을 찾는 과정이다. 통일은 또한 독재가 아니다. 다수의 합의와 소수의 존중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

-예멘, 통일은 망국이다(한겨레 ‘세상 읽기’ㆍ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 전문 보기

“현실에 기반을 두지 않는 구상은 망상이듯, 실천에 기초하지 않는 계획은 알리바이일 뿐이다. 망상적 계획은 ‘준비’라는 이름으로 현실적 실천을 건너뛰고 공상의 세계로 진입한다. 박근혜 정부가 ‘준비’한다는 평화통일 정치 이야기다. 정부는 2015년을 “한반도 통일시대를 개막하는 해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실질적 통일준비에 매진”하겠다고 선언했다. (…) 이에 조응해 통일부는 지난 1월 업무 보고에서 서울-신의주 철도 시범 운영, ‘광복 70주년 남북 공동 기념위원회’ 구성, ‘남북겨레문화원’의 서울과 평양 동시 개설 등을 북측에 제안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런 선언과 발표를 접하며 기대나 열정을 갖거나 감흥과 각오를 다지는 사람이 과연 정부나 통일부에는 있을까? 남북 관계의 오랜 교착 상태와 박근혜 정부의 반복적인 허사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말들의 향연에 헛헛하고 아득하기만 하다. 이미 지난해에도 ‘통일대박론’과 ‘드레스덴 선언’으로 온갖 구상과 계획들이 난무했고, ‘통일준비위원회’라는 기괴한 기구도 등장했다. 다시 올해는 앞의 선언들에 더해 ‘통일헌장’을 제정하고 ‘통일박람회’를 개최하며 ‘평화통일기반구축법’을 제정해 통일준비인력을 양성한다고 한다. (…) 한번 망상에 빠지면 꼬리를 물 듯, 준비에 빠지면 그저 준비에 바쁘다. (…) 실제로 행하는 일은 없기 때문에 계속 무엇을 할 것인지 궁리하게 되고, 현실적 실천에서 멀어지기 때문에 오히려 멋진 계획이 마구 떠오른다. 그런 메커니즘을 ‘준비주의’라고 불러도 될 듯하다. 이에 반해 1970, 80년대 서독 정부의 대 동독 정책 선언과 동방정책의 발표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말은 ‘현실적’ ‘실제적’ ‘실용주의적’이란 형용사였다. 서독의 동방정치가들은 ‘준비주의’에 빠질 시간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구체적이고 해결 가능한 문제들에 집중했고 동독과 협상에서 실질적인 성과를 쌓는 일만으로도 숨이 막혔기 때문이다. (…) 서독 정치 지도부는 ‘통일’이니 ‘통일준비’라는 말들을 망상가의 것으로 간주했다. 그런 유형의 발상과 언급은 동서독 관계의 실질적 발전에 오히려 방해가 된다고 비판했다. 그들이라고 왜 공산주의 체제의 인권문제에 무심했겠는가? 그들이라고 왜 베를린 장벽이나 동서독 국경을 넘다 죽어간 희생자의 눈물을 보지 못했겠는가? 그러나 ‘현실적’이고 ‘실제적’이고 ‘실용주의적’ 평화정치가였던 그들은 공산주의 독재자들을 향한 고성과 질타 같은 것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대신 그들은 동독의 인권 개선과 베를린 장벽의 붕괴를 지속적인 대화와 협상의 최종 결과물로 보았다. 다시 말해 동서독 간 대화와 협력의 전제나 조건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 망상적 통일 ‘준비’는 ‘평화통일’을 위한 정치가 아니다. 그것은 이미 정치가 아니다. 그저 알리바이요 자가당착이다. ‘준비주의’가 아니라 현실적 실천이 통일과 평화의 길이다.”

-통일 ‘준비주의’에서 벗어나라(2월 28일자 한국일보 ‘기고’ㆍ이동기 강릉원주대 사학과 교수) ☞ 전문 보기

* ‘칼럼으로 한국 읽기’ 전편(全篇)은 한국일보닷컴 ‘이슈/기획’ 코너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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