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없다는 이유로 교도소에 가야 하는 건 너무 가혹하잖아요. 돈 없는 게 이미 불평등인데 돈 없다고 또 불평등을 당하는 건 잘못됐다고 봅니다.”
지난달 25일 벌금을 대출해주는 ‘장발장 은행’을 설립하고 공동대표를 맡은 홍세화 협동조합 가장자리 이사장은 이 희한한 이름의 은행이 탄생한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톨레랑스(관용)를 역설한 책‘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의 저자이자 진보적 지식인으로 더 잘 알려진 그를 지난달 28일 서울 마포구의 한 책다방에서 만났다.
장발장 은행은 단순 벌금형을 받았지만 가난해서 벌금을 못내 교도소에 가야 하는 이들에게 무이자로 벌금을 대출해주는 곳. 설립 이틀 만에 2,000만원이 모여 1호, 2호 대출자 탄생을 눈 앞에 두고 있다. 1인당 최대 300만원까지 지원하고, 6개월 후부터는 1년 간 원금을 균등 상환하는 방식이다. 대출금은 시민 기부로 충당한다.
홍 대표는 “이중으로 소외된 사람들이 고통 받는 현실을 보면서 시민사회가 조금이라도 다가가야 한다는 데 공감하게 됐다”고 말했다. 은행은 죄질이 나쁘거나 위험 범죄를 저지른 경우가 아니라면 소년소녀가장, 미성년자 등을 우선 지원할 생각이다.
그러나 우려의 목소리가 없는 건 아니다. 기초질서 위반 등 경미한 범죄가 대상이라도 벌금을 ‘뚝딱’ 빌려주면 교화는 어쩔 것인지, 돈 없어 철창행 택한 건데 대출금을 갚지 못하면 은행이 감당할 수 있을지 등이 과제다.
홍 대표는 “교도소에 간다고 교화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교도소행 자체가 청소년 삶에 어두운 분기점일 것이기 때문에 젊은 시절 돈 없어 가둬지는 경험을 하지 않게 하고 싶어요. 대출금 상환 문제는 못 갚는 사람도 있고, 성실히 갚는 사람도 있겠지요. 하지만 이 은행으로 인해 1명이라도 불행한 운명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10명이 못 갚아도 의미가 있다고 봐요.”
현행 법은 벌금을 내는 사람의 소득이나 재산상태 등을 고려하지 않고 동일한 벌금액을 부과하는 총액벌금제다. 경제가 불평등하면 형벌 효과가 불평등하게 나타나 형벌 양극화가 발생할 수 있다. 홍 대표는 “돈이 있는 사람에게는 벌금형이 아무 것도 아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부담이 될 수 있다”며 “노키아 부사장이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하다가 과속으로 벌금 1억원 이상을 물은 것처럼 소득 수준에 따라 벌금을 차등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안으로 일수벌금제를 제시했다. 일수와 1일 벌금액을 구분해 벌금형을 매기는 것인데, 일수는 죄에 따라 확정하고 1일 벌금액은 경제력 등에 따라 정하는 식이다.
1977년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한 홍 대표는 무역회사 해외지사 근무 차 유럽에 갔다가 남민전 사건에 연루돼 귀국하지 못하고 프랑스에서 20년 가까이 망명생활을 했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후 “1987년 공소시효가 만료됐다”는 답변을 듣고 2002년 귀국한 뒤 진보신당 대표 등을 지내다 2013년 7월부터 학습공동체인 협동조합 가장자리 이사장을 맡고 있다.
글ㆍ사진=채지선기자 letmeknow@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