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진격의 갑질에 맞서 을질을 합시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진격의 갑질에 맞서 을질을 합시다

입력
2015.03.01 20:10
0 0

박민규, 땅콩회항 꼬집는 에세이

소설가 박민규 씨가 계간 ‘문학동네’ 봄호에 최근 ‘땅콩회항’ 사건을 다룬 에세이 ‘진격의 갑질’을 실었다.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카스텔라’ ‘핑퐁’ 등으로 열성팬이 많지만 외부 활동은 극도로 자제해온 작가는 지난해 세월호 참사를 기점으로 사회적 사건에 대한 발언 횟수를 늘리고 있다.

작가는 글에서 땅콩회항 사건의 주인공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을 일본 애니메이션‘진격의 거인’으로 지칭한다. 인류 역사를 통해 수없이 반복되어온 ‘인간의 인간에 대한 지배’의 굴레에서 이 거인들은 신, 왕, 교황, 귀족, 사장, 남편으로 이름을 바꿔가며 ‘갑질’을 계속해왔다는 것이다. “ ‘근대’라는 벽은 진격해오는 거인들을 막기 위해 쌓아 올린 인류의 방어벽이었다. 평등이라는 벽돌 한 장을, 자유와 인권, 민주, 개인, 시민의식이란 이름의 벽돌을 쌓아가며 얼마나 많은 이들이 죽고 피를 흘렸는지도 가늠할 길 없다.”

그러나 작가는 언론의 집중 포화로 몰락한 거인 조 씨를 보며 “찜찜하다”고 말한다. 진정 근대 정신에 입각한 응징이라 하기엔, 마녀사냥에 가까운 대중의 태도야말로 전근대적일뿐 아니라 그보다 더 악질적인 갑들에 대해선 눈 감고 있는 세태 때문이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가 근대의 벽돌을 쌓은 적이 없는 세대라는 것, 그래서 그 벽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자꾸만 잊는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근대에 기여한 바가 없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무상으로 근대의 혜택을 입은 민족과 국가는 얼마든지 존재한다. 하지만 근대의 자각과 철학 없이 현대를 살아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진격해오는 갑질에 맞서 우리가 스스로 쌓은 벽이 있다면, 그런 철학이 있다면 이것이다. 억울하면 출세해라! 이는 현대로 치닫는 시간의 방향과 달리 우리의 인프라가 그간 전근대를 향했다는 증표이다. 너도 거인이 되든지, 아니면 먹히든지.”

따라서 작가는 ‘갑질’이 아닌 ‘을질’을 하자고 제안한다. 스스로 을임을 자각하고 벽돌을 쌓기 보다 저마다 갑이 되려고 혈안인 바람에, 근대의 벽은 아무 거인이나 쉽게 넘어올 수 있는 만만한 벽이 되었다는 것이다. “당연히 막연히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그러나 실은 비어 있는 근대의 공란을 우리는 차곡차곡 메꾸어야 한다. 아마도 인내심과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희생도 따를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이 진격해오는 거인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을질이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