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 한신아파트 전용면적 60㎡
전셋값이 집값보다 100만원 높아
울산 등 지방서도 유사 사례 늘어
2월 서울 아파트 8144건 매매
거래량 늘며 집값도 상승국면
장기표류 중인 전월세상한제,
계약갱신청구권 도입 서두르고
월세 대책에만 매달리지 말고,
공공임대주택 비율 늘려야
요즘 부동산시장에는 상식을 벗어난 일들이 속출하고 있다. 집값보다 저렴해야 할 전셋값이 치솟다 못해 매매가를 넘보고 있고, 매매거래가 늘었는데도 전셋값은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과거에는 좀처럼 경험하지 못한 일들이 일상화하면서, 심지어 ‘미친 전셋값’이란 말까지 등장했을 정도다. 전문가들은 매매와 월세 대책으로 양분화돼 있는 현 정책 기조에서 벗어나, 하루라도 빨리 전세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뛰는 집값, 나는 전셋값
부동산 시장에는 이른바 ‘전세가율 60% 법칙’이라는 게 있다. 집값 대비 전셋값 비율, 즉 전세가율이 60%를 넘어서면 서서히 매매 전환이 늘면서 집값이 상승한다는 것이다. 특히 전세가율이 70%를 넘어서는 경우 집이 경매로 넘어갈 경우 세입자의 피해액이 커질 수 있다는 점에서 70%는 마지노선이라는 게 그 동안의 정설이었다.
언뜻 보면 현재 부동산 시장도 이런 공식을 따르는 것처럼 보인다. 작년 말 이후 전세가율이 70%를 돌파하면서 주택 매매 거래량도 늘어나는 추세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1월 주택거래량이 10년 만에 최대치(7만9,320건)를 기록했고, 아직 총 거래량 집계가 안 된 2월에는 서울 아파트 거래량(8,144건)이 조사가 시작된 2006년 이후 같은 달 최대치로 조사됐다. 거래량이 늘면서 집값 역시 1, 2월 각각 0.14%, 0.2% 오르는 등 상승 국면이다.
하지만 문제는 집값보다 훨씬 더 가파르게 상승하는 전셋값이다. 일부 지역에서 전세가율이 90%를 넘어서더니 심지어 집값보다 비싼 ‘귀한 전세’까지 등장했다. 1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사이트에 따르면 경기도 화성시 병점동 한신아파트는 1월 말 전용면적 60㎡ 전셋값이 1억 7,000만원으로 매매가(1억 6,900만원)보다 100만원 더 높았다. 수도권뿐 아니라 울산 등 지방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심심치 않게 벌어지고 있다.
아직은 지방의 노후주택이나 수도권 외곽지역에서 나타나는 예외적 현상이지만 그 범위가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김규정 NH투자증권 부동산 연구위원은 “변두리 지역은 교통이 불편하고 집을 되팔기가 쉽지 않아 사람들이 매매보다는 세 들어 사는 것을 더 원한다”며 “이런 상황에서는 전셋값이 집값을 추월할 가능성이 있고, 그렇다고 하더라도 임대를 택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전세 수요가 매매 수요로 바뀌면 전셋값이 꺾인다는 상식도 통하지 않을 거란 전망이 적지 않다. 박원갑 KB국민은행 수석연구원은 “지난해 서울 전셋값이 4.27% 오를 동안 매매가는 0.8% 상승하는데 그쳤고, 올해도 이런 현상은 지속될 것”이라며 “지금의 매매 움직임은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감 덕분이 아니라 전셋값 폭등을 견디다 못한 세입자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최후에 선택한 결과”라고 말했다.
당장의 전세대책 시급
앞으로의 전망도 밝지는 않다. 전문가들은 전세 대란의 가장 큰 원인으로 미래의 불확실성과 수급 불균형을 꼽는다. 조명래 단국대 교수는 “현재 주택 가격 상승률이 물가 수준을 따라가지 못하는데다 향후 집값이 오른다는 보장도 없는데, 집을 사면 추가 대출에 취득세, 재산세 등 지불해야 할 비용이 적지 않다”며 “이런 위험과 재정 부담을 피하면서 가능한 주거비용을 낮추는 형식이 전세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탓에 전세난은 일어날 수 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수요는 엄청난데 물량은 달리니 전세는 그야말로 ‘부르는 게 값’이 된다는 것이다.
특히 보증금을 확보할 수 있는 ‘안전한 전세’가 부족한 것은 가뜩이나 모자란 전세물량을 더 쪼그라들게 만드는 원인이 되고 있다. 선대인 선대인경제연구소장은 “과거엔 빚이 있어도 집값 상승에 대한 믿음이 있어서 대출을 낀 집이라도 심각한 수준만 아니면 안전한 전세라고 봤지만, 지금은 집값이 오히려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해 그만큼 기피물건이 많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세난은 이미 한계상황에 다다른 지 오래이지만, 정부는 여전히 “매매가 활성화되면 전세난이 잡힐 것”이라는 원론적인 얘기만 되풀이하고 있다. 그나마 내놓고 있는 대책이라는 것이 모두 월세 대책 일색이다. 신혼부부와 대학생, 사회초년생 등을 대상으로 한 ‘행복주택’이나 중산층을 상대로 한 ‘기업형 임대주택’ 모두 월세가 기본 형태다.
중장기적으로 우리나라의 임대시장이 전세에서 월세로 전환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방향이라고 하더라도, 당장 전세난민들을 도외시한 채 월세 대책에만 매달려서는 곤란하다는 지적이 들끓는다. 조명래 교수는 “주거민의 절반은 세입자인데 정부가 이들을 위한 정책에 소극적인 것은 국민의 반(집주인)만 편드는 것이고 사적 자산 가치만 보호하는 것”이라며 “임대차 관계와 관련된 규제 및 임대료 산정 등 주거복지 업무는 공급 위주 정책을 펴는 국토부에서 떼어 내 따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치권 이해관계 대립으로 장기 표류하고 있는 전월세 상한제와 계약갱신청구권 도입 문제도 서둘러 결론을 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전월세 임대료 상승폭을 일정 비율 이내로 제한하는 동시에 특정한 귀책사유가 없다면 세입자 청구에 따라 임대차 계약이 갱신되도록 함으로써 주거생활 안정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토교통부의 ‘2014년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자기 집을 가지고 있으면 평균 11.2년을 머무는데 반해 세 들어 사는 가구는 3.5년에 불과했다. 이밖에 “서민주거 안정을 위해 5% 수준 밖에 되지 않는 우리나라의 공공임대주택 비율을 끌어올려야 한다”(선대인 소장) 등의 주장도 제기된다.
강아름기자 sar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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