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신자유주의가 만들어 낸 새 발명품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신자유주의가 만들어 낸 새 발명품

입력
2015.02.27 17:06
0 0

태희원 지음

이후 발행ㆍ288쪽ㆍ1만5,000원

한국은 성형수술 천국이다. 2011년 기준으로 인구 대비 성형수술률은 전 세계 1위(1000명당 13건, 2011년 기준), 세계 성형 시장 규모(200억 달러)의 4분의 1을 차지한다.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뚱뚱하고 못생겨서 버림받은 아내가 성형수술을 받고 미녀로 거듭나는 설정의 TV 드라마가 최근 히트를 쳤다. 케이블TV의 ‘성형 리얼리티 쇼’는 수술 전과 후를 대비해 보여주며 성형으로 자존감을 되찾았다고 말하는 여성들의 자못 감동적인 사연을 전하는 데 열중한다. 성형을 왜 하느냐는 질문은 쓸데없는 것이 됐고, 어떻게 안전하게 하느냐가 관심사다. 왜 이렇게 됐을까.

젠더와 문화 연구자 태희원이 쓴 성형은 성형중독 사회를 개탄하는 뻔한 책이 아니다. 성형을 부추기는 일부 의사들의 장삿속이나 성형미인을 꿈꾸는 여성들의 허영심을 비난하는 건 진작부터 있었다. 그래도 수술 받겠다는 사람들에게 우리 사회가 하는 말은 부작용 가능성이 있으니 신중하게 결정하라는 충고가 고작이다. 이 책은 달리 접근한다. ‘성형 천국’ 한국을 형성한 역사적 뿌리와 전개, 이를 강화하는 사회적 메커니즘을 밝혀 성형을 바라보는 새로운 틀을 제시한다.

큰 눈과 오뚝한 콧날의 서구적 외모가 근대화의 상징으로 등장한 1920년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미용 형성 역사와 현재, 문제점을 서술하면서 이 책이 찾아낸 중요한 변곡점은 성형이 단순한 외모 관리를 넘어 자기계발의 논리로 확장되는 순간이다.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불어닥친 신자유주의 광풍이 방아쇠를 당겼다. 끝없이 불안을 조장하는 무한경쟁 사회로 가다 보니 외모도 스펙이 되었다. 미용 성형은 이제 허영이 아니라 자기완성 프로젝트이자 자기계발로 통한다. 꾸준한 자기계발을 하자니 재수술도 당연하다. 저자는 “자기계발로서의 미용 성형은 신자유주의적 흐름이 만들어낸 새로운 발명품”이라고 분석한다.

또 하나, 최근에 나타나고 있는 의미심장한 풍경은 안전한 수술을 받으려고 정보를 모으고 공유하며 공부하는 소비자-환자의 등장이다. 그러나 이 ‘똑똑한’ 소비자들도 여전히 성형 사실을 밝히기를 꺼리는 편이어서 의료권력에 대항해 환자로서 제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성형 피해와 부작용이 속출하는데도 상황이 크게 개선되지 못하는 이유다. 따라서 합리적 소비를 강조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자기계발의 이름으로 이뤄지는, 성형이라는 ‘자기개조 회로’를 개인의 힘으로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며, 그 회로 자체에 균열을 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광화문 야매에서 압구정동 성형타운까지 미용 성형 시장의 현장에서 만난 의사, 간호사, 환자들을 인터뷰해 생생하게 썼다. 개화기 여성들의 외모 가꾸기론이나 미용 성형의 초기 역사에 벌어진 갖가지 사건은 흥미로운 진풍경이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