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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최고재판소 연방대법관 9인과 시대정신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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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최고재판소 연방대법관 9인과 시대정신의 탄생

입력
2015.02.27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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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리 투빈 지음ㆍ강건우 옮김

라이프맵ㆍ640쪽ㆍ3만8,000원

어느 국가나 최고재판소의 역할과 기능은 지대하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도 옛 통합진보당의 해산 결정과 간통죄에 대한 위헌 판결 등으로 헌법재판소의 존재 의미가 집중 부각됐다. 최고재판소의 결정은 최종심이라는 점에서 재판관들의 고뇌 또한 적지 않다.

미국의 최고재판소인 연방대법원은 9명의 재판관으로 구성돼 있다. ‘더 나인(The Nine)’이라는 책 제목이 나온 연유다. 언론인 출신의 저자는 연방대법원을 출입하면서 겪은 대법관들의 고뇌와 대법원 구성을 둘러싼 권력의 절치부심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다.

연방대법원의 구성은 국정운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인종차별과 낙태문제가 공화당과 민주당을 편 가르는 기준점인 상황에서 최종 결정권을 대법원이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대통령 입장에서는 자신에게 유리한 대법원을 구성하지 않으면 국정을 원만하게 운용하는 게 애당초 불가능하다. 더구나 연방대법관은 종신직인 관계로 대법관 임명 기회를 갖는 것은 미국 대통령 입장에서 행운이나 마찬가지다.

이 때문에 역대 대통령들은 취임하자 마자 대법원 구성에 전력을 투구한다. 1993년 대법관 선임 기회를 잡은 빌 클린턴 대통령이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를 사상 두 번째 여성 대법관으로 임명하기까지는 십여명의 후보자를 선상에 올려 검증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최종 후보에 올렸던 스티븐 브레이어를 ‘관대한 마음이 없다’는 사소한 이유로 퇴짜를 놓았다가 이듬해 또다시 대법관 선임 기회를 잡고 폐기됐던 브레이어 카드를 다시 꺼내는 진통을 겪기도 했다.

대법관의 인사청문회 또한 혹독하다. 클래런스 토마스 대법관이 대표적이다. 91년 사상 두 번째 흑인 대법관으로 지명된 토마스의 청문회는 순탄하게 시작했지만 애니타 힐이라는 여성의 폭로로 미국 전역이 소란스러워졌다. 연방 판사 재직 시절 보좌관이었던 힐이 성희롱을 당했다고 주장하면서 토마스는 낙마 직전까지 몰렸다가 보수 정권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가까스로 상원 인준을 통과했다.

레이건정부 이후 대법관을 망라한 책에서는 샌드라 데이 오코너가 단연 돋보인다. 최초의 여성 대법관이면서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는 남편의 간호를 위해 퇴임 결정을 한 오코너는 전세계 법조계에서도 전설처럼 남아있다. 무엇보다 오코너는 위대한 중재자(swing voter)로 미국인들에게 각인돼 있다. 그는 미국 사회가 낙태나 인종차별을 둘러싸고 양분됐을 때 항상 균형을 잡아주는 한 표를 행사했다. 그런 오코너를 잡기 위해 연방대법원의 양 진영은 매번 구애작전을 펼쳐야 했다.

헌재가 옛 통진당을 해산하는 결정을 내렸을 때 우리는 심각한 이념갈등을 겪었다. 미국도 연방대법원이 낙태나 인종차별 같은 민감한 이슈를 판단할 때마다 극심한 사회혼란을 거치기는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최고재판소의 판단이 없는 경우를 상상할 수도 없다. 최고재판소의 판단은 대체로 시대정신을 반영한 당대의 사회규범으로 보는 게 도리어 옳아 보인다.

김정곤 정치부장 jk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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