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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꾼 겨울휴가 벌써 끝나나… 강원도 산골은 5월부터 일한다는데

입력
2015.02.27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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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만 되면 기막힌 기획도 하고 책 30권 읽고, 약도 끓여놓고

계획은 늘 하지만 그걸로 끝나… 이번 겨울도 허망하게 지나가네

겨울은 끝나가지만 땔감은 수시로 준비해 두어야 한다. 농촌 생활은 무엇이든 미리미리 챙겨 놓는 게 생활의 지혜다. 장씨아저씨와 아주머니가 농장에 들러 땔감으로 쓸만한 잡목을 경운기에 싣고 있다.
겨울은 끝나가지만 땔감은 수시로 준비해 두어야 한다. 농촌 생활은 무엇이든 미리미리 챙겨 놓는 게 생활의 지혜다. 장씨아저씨와 아주머니가 농장에 들러 땔감으로 쓸만한 잡목을 경운기에 싣고 있다.

길을 나서니 차들이 난리 북새통이다. 어느 정승집 자제라도 돌아가셨는지 마을 장례식장 주차장이 모자라 갓길도 없는 길가에 차들이 늘어섰다. 좁은 길을 왕복하는 차들과 오가는 사람들 탓에 아찔한 일들이 자주 일어나는 곳이다.

그날 아찔한 건 나였다. 식장 길을 따라가는데 운전석 문을 불쑥 열며 나오는 한 문상객 때문에 급정거를 하며 겨우 사고를 면했다. 그나마 속도를 미리 줄이느라 브레이크에 발을 대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큰일 치를 뻔 했다. 나도 놀랐지만 그쪽도 적잖이 놀랬나 보다. 시커먼 얼굴에 흰자위가 다 나올 정도로 둥그래졌던 눈이 점차 작아지더니 입으로 뭐라 중얼댄다. 모양만 봐도 무슨 숫자를 말하는 거다. 애들도 알 법한 그 모양에 창문 열고 한마디 해줄까 하다가 참았다. 인상 더럽기가 나 못지 않은 걸 보니 살면서 어려움이 참 많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 들은 교육에서 강사가 뭔 법칙이라며 말하기를 “첫인상에서 시각적 요소가 차지하는 게 절반 이상”이라던데, 그 인간도 ‘외모랑 상관없는 일을 해야 먹고 살겠다’ 싶어 남 같지 않은 마음에 봐 준거다.

차 번호판을 보니 이 지역 차는 아닌 것 같았다. 누가 들으면 지역 표기도 없는데 어찌 알까 싶겠지만, 구례 바닥이 원체 좁아서 조금 돌아다니다 보면 번호판과 차종이 눈에 익게 된다. 번호판이 곧 이름표인 셈이다. 마주 오는 차 안에 탄 사람은 안보여도 번호판을 알아보고는 서로 인사한다. 심지어는 사람 이름대신 차량번호로 호칭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일삼공구랑 사칠이팔이랑 점심에 수제비 집으로 들어가던데” 하는 식이다. 혹은 서 너 명 앞에 두고 “거 무쏘 삼팔삼칠 어떤 놈인지 아는 사람 있나” 하면 거의 그 자리에서 신상이 털리기도 한다. 짙게 썬팅한 차 안에서도 경거망동하면 안 되는 이유다.

어쨌든 설 명절을 앞두고 있기도 했고 좋은 게 좋은 거다 싶어 맘 추스리고 농장으로 향했다. 둘러보니 요 며칠 새 마늘이랑 양파가 부쩍 자랐다. 왕겨 훈탄도 만들어 넣고 이것 저것 유기물도 많이 얹어 줬더니 효과가 있는 것 같아 뿌듯했다. 비닐 안 덮어도 잘 자라주는 게 고마워 ‘누가 좀 봐줬으면’ 싶은 마음도 들었다. 노란 볏짚과 왕겨를 바탕으로 진한 초록이 대비되니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다.

마음이 통한 것 일까. 때마침 전 이장님댁 사모님인 오봉댁 어머니가 농장에 들르셨다. “어머니 웬일이세요. 어떻게 오셨어요“ 인사 드리면서도 시선을 은근히 마늘밭 쪽으로 유도했다. 환하게 웃으시던 오봉댁 어머니가 드디어 마늘밭을 보고 말씀하셨다. “이거 워쩌까이. 얼릉 풀을 뽑아야 쓸꺼인디. 쟈들이 금시 방석처럼 들어 앉어분단 말이시” 하며 찡그리셨다. 그러고 보니 살짝 살짝 보이던 풀들이 어느새 군데군데 자그마한 섬들을 이루고 있었다. 내 눈엔 마늘만 보였고, 어머니 눈엔 풀이 먼저 보였던 거다. 바로 표정 가다듬고 대답했다. “뽑아야죠 뭐.” 4년간 어르신들과 밭에서 나누는 대화 중에 가장 많이 하게 되는 말이다.

전 이장님댁에서 받은 저녁 상차림. 싱싱한 재료에 손맛을 곁들여 해내시는 반찬이 일품이라 과식하기 십상이다.
전 이장님댁에서 받은 저녁 상차림. 싱싱한 재료에 손맛을 곁들여 해내시는 반찬이 일품이라 과식하기 십상이다.

“원샌 애쓰는 거 다 아니께 이거 궈 잡수시면서 시나브로 허씨요.” 설 대목 장봐서 집에 들어가시는 길에 삼겹살을 사셨단다. 고기라면 그냥 엎어지고 환장하는걸 아시고 일부러 사오신 거다. 나 위해서 짓는 농사, 변변한 것 하나 갖다 드린 게 없는데 늘 애쓴다며 자식처럼 생각해 주신다. 설 쇠러 서울 가기 전에 인사 드리려고 술 걸러 병에 담던 참인데 한 발 늦었다. “내일 서울 간다요? 선재랑 즈그 어매랑 이따 와서 저녁이나 묵고 가요 잉” 풀 때문에 창피하고 고기 때문에 감사한데, 서울 간다고 또 챙겨주시니 멍하니 서서 아무 말씀도 못 드렸다.

사실 이 곳에 내려와서 부모님이 많이 생겼다. 형님이라고 부를 사람보다 아버님, 어머님이라고 해야 할 분들이 더 많다. 꼭 연세 때문에 그런 것만은 아니다. 가끔 마을회관을 지나치다가 어머니들과 눈이 마주치면 강렬한 손짓을 보내신다. 들어가보면 “점심 안 잡쉈지? 여기서 잡숫고 가요. 동태 지져놨응게 후딱 한 그릇 잡솨” 하신다. 점심을 먹었건 안 먹었건, 감사히 한 그릇 먹고 나면 오히려 “고맙소 원샌” 하신다. 엥? 처음엔 이해가 안됐다. 아니, 빈손으로 지나가던 놈 애써 불러들여 뜨신 밥 먹여주시고는 먹은 놈한테 고맙다니, 이런 경우가 다 있나. 어머니들은 의아해 하는 나에게 “반찬도 없는데 이렇게 들어와서 잘 잡수니 얼매나 고마우요” 하신다. 한참 어린 놈에게 존대를 하시지만 아마도 자식 대하는 마음으로 하시는 말씀이고, 나도 들을 때 마다 엄마 말씀처럼 들리곤 한다. 뭐라 말씀 드리기도 어려워 “차려주시는 밥 먹고 고맙다는 말씀 듣는 데는 여기 밖에 없을 거예요” 하면 그저 또 고맙다고 하신다.

설 연휴가 시작되는 날 아침 서둘러 서울로 출발했다. 구례로 내려온 이후 우리 가족은 명절 때마다 거꾸로 상행선 도로를 탄다. 충남 공주쯤 가다 보니 하행선은 벌써 도로가 만차 상태다. 아내에게 “아이구 저거 차 밀리는 것 좀 봐. 서울부터 막혔을 텐데 어쩌냐” 하니 아내가 “그래서, 좋아?” 묻는다. “좋기는 뭐가 좋아! 막히니까 안타깝다는 거지.” 힐끗 쳐다본 아내가 “저쪽은 막히는데 이쪽은 뻥 뚫리니까 좋지 않냐구. 아니야?” 되묻는다. “에이, 사람이 그러면 안되지. 어떻게 남의 불행이 내 행복인가.” “당신 예전에두 반대편 막히면 은근히 좋다구 했으면서 뭘!” 사실 조금 흐뭇하긴 했다. 꼭 반대편이 막혀서 좋다는 게 아니다.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귀성하는걸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데 꼭 기분이 나빠야 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아닌가?

오랜만에 뵙는 부모님은 얼굴이 예전 같지 않으셨다. 편찮으신 곳은 늘고 기력은 확연히 줄었다. 4년 전, 귀농하겠노라 말씀 드렸을 때 걱정보다는 격려에 무게를 두셨던 아버지는 암 수술 뒤끝이 길게 이어져 내내 힘들어 하셨다. 아들 식구 사는 집을 내려와 직접 보고서야 “쓰러져가는 집에 살까 봐 걱정했다”며 우려와 안도가 담긴 한숨을 내쉬던 어머니는 허리와 다리 통증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아직도 ‘엄마’라고 부르지만 내년이면 팔순이다.

필자의 아버지 어머니가 모처럼 모인 손주들과 이야기 나누고 있다.
필자의 아버지 어머니가 모처럼 모인 손주들과 이야기 나누고 있다.

설날 아침, 세배 드리는 마음이 좀 묘했다. 뭐라고 설명하긴 힘들다. 예전엔 마음 속으로나 드리는 말씀이나 그냥 ‘건강하세요’ 였지만 이번엔 달랐다. 머리를 마루에 대며 나도 모르게 읊조렸다. ‘계셔주셔서 고맙습니다. 그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농사 짓는 자식 덕도 별로 못 보시면서, 내려가는 차편에는 아이스박스가 터지도록 음식을 담아주셨다. 자식들 앞에서는 ‘끙’ 소리 한 번 안 내지만 걸음걸이도 힘드신 분이 어떻게 했을지 뻔한데 넙죽 받아 드는 꼴이라니. 자식은 이마도 넓어지고 흰머리도 늘어가는 중년에 있건만 부모님 맘에 한 번 막내는 영원한 막내인가 보다. 아버지는 차 뒤꽁무니가 사라질 때까지 길가에 서 계셨다. 그러고도 조금 더 계셨을 게 분명하다.

내려와서 아내와 함께 간전댁 할머니를 찾아 뵈었다. 곶감과 함께 어머니가 마련해준 양말 꾸러미를 챙겨 들어서니 마당 한 편에서 또 뭔가를 하고 계셨다. “세배 받으세요” 하니 손사래를 치시며 도망가신다. 안되겠다 싶어 방에 먼저 들어갔고 마지못해 따라 들어오신 할머니는 우리 가족을 꼭 안아주시며 “절은 됐어요. 선재네한테 내가 많이 고마워요” 하신다. 나보다 작은 체구의 노인이 어떻게 이렇게 폭 안아주실 수 있을까. 푸근한 큰엄마요 할머니였다.

전 이장님댁도 찾아 뵙고 세배를 드렸다. 내외분은 서른 살 아래인 우리 부부에게 맞절을 하셨다. 오봉댁 어머니는 나에게, 아버님은 아내에게 아직도 말씀을 놓지 않으신다. 그러면서 작년 보다 100퍼센트 인상된 세뱃돈을 주셨다. 5000원에서 두 배 오른 1만원이다. “아버님 이건 아닌 것 같은데요” 했지만 자주 뵐 수 없는 환한 표정으로 “자식들한테는 다 줬어” 하시는데 거절할 수가 없었다.

농사꾼과 상관 없는 연휴도 지나고 날씨도 푹해지니 이제 겨울휴가도 끝인가 보다. 아쉽다. 내내 기다렸던 겨울이 이렇게 지나가나 싶어 허망하다. 겨울만 되면 기가 막힌 기획도 한 번 해보고, 책도 한 30권 읽고, 작물에 뿌릴 약도 좀 많이 끓여 놓고 하려던 계획은 또 계획으로 끝나나 보다. 강원도 산골은 겨울이 6개월이라는데 그쪽으로 내려갔으면 일년의 절반은 쉴 수 있는 걸 잘못한 걸까. 한 달 전만 해도 “여기가 이렇게 추운데 강원도로 가면 어쩔 뻔 했어”하며 아내와 얘기한 기억이 또렷한데도 얼마나 됐다고 이런 생각을 하는지 한심하다.

장씨아저씨와 아주머니가 농장에 들러 땔감으로 쓸만한 잡목을 경운기에 싣고 있다.
장씨아저씨와 아주머니가 농장에 들러 땔감으로 쓸만한 잡목을 경운기에 싣고 있다.

“씨감자 받았는가~” 장씨아저씨가 농장으로 들어오셨다. 작은아버지 같은 분이다. 아주머니도 따라 오셨다. “예, 한 박스 신청해서 설 전에 받았어요.” 마늘밭에서 뽑던 풀 던져버리고 나오니 아저씨가 물으신다. “허던 일 계속 해! 나중에 나 땜시 일 못했다 소린 허덜 말고.” 시선은 반대편을 향한 채로 두 분이 농막 쪽으로 걸어가셨다. 어떻게 하라시는건지.

차를 내드렸더니 첫 입을 댔다가 뜨겁다고 뱉으셨다. 내가 부러워하는 아저씨의 두꺼운 아랫입술은 그런 과정의 반복으로 만들어진 것 같다. “우리 감자씨는 누가 삶아 먹었는지 왜 아직도 안 왔으까요” 아주머니가 걱정 하시길래 “아직 2월인데요 뭐, 한참 남았네요” 답했다. 아저씨가 바로 정색하신다. “요 아래 조씨는 벌써 감자밭 다 갈아놨더만. 한가한 소리 하구 있네”하며 퉁바리를 주셨다. 나도 이제 좀 안답시고 말대답 했다. “거긴 비닐 씌우니까 서리 와도 괜찮지만 저희는 조금 늦게 심어야 돼요. 서리에 감자싹 꼬실라지면 어떡해요.” 아저씨가 헛웃음을 치신다. “어쭈, 웃기구 있네. 지금부터 땅 갈아서 3월에 심으면 싹 날 때쯤 때 맞춰 서리 끝나네. 상추도 늦었어. 토란 생강까지 하려면 미리미리 준비해 둬. 부모만 안 기다리는 줄 아는가. 땅도 기다려주지 않어.”

화제를 바꿨다. “아저씨 세배 드려야 되는데...” 했더니 “설이 언젠디 이제 세배여. 좋아. 남원에 맛있는 집 알아놨응게 그리 가서 하세” 하시며 일어나셨다. 농막을 나서던 아저씨가 물으셨다. “육공팔이는 어쩌고 아직 추운데 싸이카 타고 다니는가.” 육공팔이는 우리 차 번호고 싸이카는 오토바이를 말한다. “제가 육공팔이 타고 애 엄마 싸이카 타게 할 수는 없잖아요.” 답하니 “그건 그러네. 아주머니한테 잘 혀. 늘그막에 도망가지 않게” 하신다. 그래서인가. 아저씨는 승용차건 경운기건 항상 아주머니를 뒷자리에 태우고 다니신다.

아저씨 배웅 겸 마늘밭을 지나면서 잡초가 보기 싫어 궁시렁 댔다. “강원도는 4월까지 얼음이 있다는데... 거기 사람들은 5월부터 농사 시작한대요.” 아저씨가 다시 묘한 표정으로 쳐다보시더니 일갈하신다. “그냥 일하기 싫으면 싫다고 혀. 그럼 에스키모는 365일 놀고 먹는다냐!” 아시는 것도 많다. 말씀마다 옳으신 말씀이다. 그저 “네” 할 수 밖에.

前 한국일보 기자 cameragag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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