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미워질 때…" 행복을 위한 조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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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미워질 때…" 행복을 위한 조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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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27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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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 내가 골랐는데 뭐” 분노 체념 수긍 거쳐 원숙한 사랑 돼

둘째 아들 가수 이적 낳고 '경단녀'… "엄마 노릇 남과 비교하지 마세요"

박혜란씨는 “사람들이 지금 고생하면 나중에 행복하겠지 하는데 살아 보니 그렇지 않더라”며 “지금 행복해야 나중도 행복한 것처럼 부부간의 대화도 미루지 말고 그때그때 하라”고 말했다. 나무를심는사람들 제공

가수 이적의 어머니인 여성학자 박혜란(69)씨가 결혼에 관한 새 책을 냈다. 그런데 성공적인 결혼을 위한 조언 대신 남편 험담과 결혼생활에 관한 푸념만 잔뜩 늘어 놓았다.

그는 그야말로 불 같은 연애 끝에 결혼했다. 대학 1학년 가을 교정을 어슬렁거리다 헌팅 나온 연극반 선배를 만나 5년 반을 연애하고 결혼해 45년을 살았는데, 대범하고 유머러스했던 남편은 갈치 한 토막을 상에 내면 정신 없이 혼자 먹어 치우는 무심한 이가 되어 버렸다. 신혼 초부터 이때껏 싸우며 ‘애들만 없었으면 열두 번도 더 헤어졌다’는 그의 고백을 보자면 응당 책 제목은 ‘결혼하지 마라’가 되어야 할 텐데 반대다. ‘결혼해도 괜찮아’(나무를심는사람들 발행).

박씨는 27일 한국일보와 전화 인터뷰에서 “진흙탕에 나만 빠지면 불운이지만 여럿이 함께 빠지면 놀이터가 되지 않냐”며 “누구를 가르치려는 생각도 주제도 안되고 그저 난 이렇게 살았다고 얘기했는데 이상하게 공감하는 사람이 많더라”고 말했다.

“아들들이 책 제목이 결혼추진운동본부 위원장 말씀 같다며 ‘노땅’ 티가 난다고 불만이었어요. ‘나 혼자 산다’ 하는 시대에 이런 책을 쓰는 것도 시대에 뒤떨어진다고 하더군요(웃음).” 둘째 아들인 가수 이적은 이 책을 두고 트위터에 제목과 달리 내용은 ‘결혼 안 해도 괜찮아’인 책이라고 소개했다. 박씨는 책이 ‘결혼해도 괜찮아 혼자라도 괜찮아, 그렇지만 다 행복해야 해’ 하는 의미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박씨는 책에서 아직도 남편이 집에 들어오는 소리에 가슴이 울렁인다는 친구의 고백에 철렁하고, 아들에게 맞장구를 기대하며 남편 흉을 보다 ‘그런데 왜 이혼 안 하셨어요’하는 면박을 당하면서 인생은 어차피 혼자구나 하며 급격히 외로워질 뿐이라고 털어놨다. 남편과의 만남은 운명이 아니라 차라리 우연으로 치부해야 불쑥불쑥 올라오는 불만과 이혼에 대한 생각을 누르기에 수월했다고도 했다.

“누가 물으면 밤낮 다른 변화를 주기에 귀찮아서 그냥 사는 거라고 얘기해요. 그런데 내 남편만 아니었다면 (살면서)평생 그리워했을 사람이잖아요. 비 오는 날 생각날 만한. 갈치를 저 혼자 먹어 치우는 무심한 남편이지만 그 남자 내가 골랐지 뭐.”

결혼도 각오를 가지고 해야 한다는 그는 “이왕 결혼한 사람이라면 수동적이거나 막연한 기대를 품지 말고 일방적으로 상대에게 의존하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동반자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넓은 지구에서 수많은 사람 중에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이 몇 십 년 지지고 볶으면서 헤어지지 않고 끈질기게 함께 살았다는 것 자체가 기적 아니겠어요.”

박씨는 남편이 미워질 때는 내가 왜 이 사람을 좋아하게 됐는가 돌아본다고 했다. 꼴 보기 싫다가도 다시 좋아지고, 분노하다 체념과 수긍을 거쳐 결국 원숙한 사랑으로 마무리되는 게 결혼생활이라고 한다. 책은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부부싸움 등 평범한 결혼생활을 그저 솔직히 풀어 놓은 듯 보이지만, 반백 년 결혼생활 노하우는 물론 비혼과 결혼 정년제 등 여성학자의 식견이 녹아 있어 풍요롭다.

입말로 써내려 간 단순 명쾌한 문장과 톡톡 튀는 감성과 유머가 일품인 그의 책은 함부로 충고하지 않는다. 책에서 밝혔듯이 읽는 사이 ‘네 남편은 그 정도냐, 우리 남편은 열 배는 더하다’는 공감과 위안을 얻게 되고, 그러다 보면 배우자의 결점이 견딜만한 수준으로 스르르 내려앉는 이른바 힐링 효과를 경험하게 된다.

연애 때 장점이 결혼생활에서는 치명적 단점이 되어 돌아오는 건 결혼생활이 가진 모순이자 현실이다. 기력도 달려 이제는 적당한 선에서 휴전을 선포할 줄 알게 되었다는 그는 “나이 덕분에 금방 잊어버리는 것도 소득”이라고 했다. “평생 티격태격하지만 이제는 점심 메뉴 같은 사소한 걸로 내용이 바뀌었고 상처를 받기보다는 ‘다 별거 아니야, 내일 되면 다 잊어버리니까 미리 잊어버리자’하고 편하게 살아요. 대책 없는 낙관주의자, 결혼주의자, 출산주의자랄까.”

결혼과 떼어놓을 수 없는 출산과 육아에 대해서도 “아이를 안 낳을 거라면 몰라도 낳는다면 좀 더 헐렁한 계획표를 짜라”며 아이를 낳는 데 딱 좋은 시기가 있겠느냐고 말한다. “인생 길게 봐야 해요. 평생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아요.” 둘째 이적을 낳고 맡길 곳이 없어 동동거리다 직장을 그만두고 10년간 육아에 전념했던 경력단절 여성이었다는 그는 워킹맘들에게도 “아이에게는 평생 미안한 게 엄마”라며 지나친 죄의식을 갖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엄마 노릇을 남과 비교하지 말라”고 덧붙였다.

박씨는 35만부가 팔린 육아서 베스트셀러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의 저자이기도 하다. 아들 셋이 서울대에 들어간 것이 화제였지만, 특별한 교육지침은 없다. 그저 비교하지 말고 아이 자체를 바라보라고 말한다. “부러워한다고 내 남편이 다른 남자가 되는 건 아니잖아요. 아이들도 마찬가지예요. 다른 아이 또는 형제랑 비교하면 굉장한 불안과 불만을 갖게 돼요. 그저 자기가 가진 장점을 피워내도록 옆에서 봐주는 거죠.”

책으로 험담세례를 맞은 남편의 반응을 물었더니 이런 답이 돌아 왔다. “집에 먼저 책이 왔기 때문에 첫 독자였죠. 그런데 노코멘트에 허허 웃기만 하더니 ‘나만 묵사발 됐지 뭐’라고 한마디 하더군요. 대범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무심한 거지. 불만? 자기도 쓰면 되잖아(웃음).”

채지은기자 c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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