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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으로 한국 읽기] 칼잡인가 칼인가

입력
2015.02.27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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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망한 착종의 시대다. 사정(司正) 주체ㆍ도구ㆍ대상이 뒤섞였다. 검찰이 권력에 영합하면서다. 힘에 의해 정의가 구축된 결과 약자한테 남은 건 없다. 역학(力學)이 유일 학문이다. 사진은 SBS 드라마 ‘펀치’의 한 장면. 출세만 추구하는 검찰총장(조재현 분)이 등장한다. SBS 제공
허망한 착종의 시대다. 사정(司正) 주체ㆍ도구ㆍ대상이 뒤섞였다. 검찰이 권력에 영합하면서다. 힘에 의해 정의가 구축된 결과 약자한테 남은 건 없다. 역학(力學)이 유일 학문이다. 사진은 SBS 드라마 ‘펀치’의 한 장면. 출세만 추구하는 검찰총장(조재현 분)이 등장한다. SBS 제공

검사는 칼잡이다. 범법 도려내라 준 메스다. 권력도 대상이다. 정작 공안은 정의 관철이다. 하지만 스스로 칼 노릇이다. 도구로 순치됐다. 보상은 출세다. 염치와 함께 본분을 버렸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 김진태 검찰총장이 신년사에서 공안검찰의 기치를 높이 들더니, 급기야 박성재 서울중앙지검장도 최근 취임사에서 공안검찰의 역할을 최우선으로 꼽았다. “헌법 가치를 부정하고 폭력과 테러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파괴하고자 하는 국가안보 위해세력은 초기부터 수사하고…” “노사 간 갈등도 노사의 자주적 해결이 우선돼야 하겠지만 불법 행위에 대해서는…” 등이다. 있는 그대로 틀린 말은 없다. 공공의 안전을 위하고,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공안의 중요성을 누가 모르겠는가. 하지만 공안 검찰은 국민과 시대의 눈높이에 맞춰 바뀌지 못한 채, 과거의 음습함을 벗지 못하고 권력 지향성은 독재시절 못지 않게 강화된 듯 하다. 공안 검찰의 문제점은 무엇보다 균형감각의 상실에 있다. (…) 검찰은 불법파업 노동자나 집회 참여자를 엄벌하겠다고 틈만 나면 공언하지만, 임금 체불이나 부당노동행위 등 근로기준법 및 노동조합법을 위반한 경영자를 엄벌하겠다고 말하는 것은 본 적이 없다. 엄연히 공안수사 대상인데도. (…) 검찰은 국가정보원이 수개월 동안 피의자성 참고인을 감금하고, 변호사 조력도 없이 진술을 받은 것을 아직도 옹호하고 있다.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인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에서 보여준 공안 검찰의 막무가내 모습이다. (…) 이런 검찰을 지켜보다 보면, 역사는 퇴보할 수 있으며 현재 내가 그것을 목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50년 전 공안검사들이 중앙정보부(국정원의 전신)의 사건 조작을 견제하고, 서슬 퍼런 시대에 무고한 피의자들을 살렸던 것과 비교하면. 1964년 중정은 도예종 등 57명의 혁신계 인사와 언론인ㆍ교수ㆍ학생이 인민혁명당을 결성해 국가전복을 음모했다고 1차 인혁당 사건을 발표했다. 조작 의혹이 짙었고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앞뒤가 맞지 않는 진술 외에 증거가 하나도 없다고 기소를 거부했다. 검찰 고위층이 기소하게 하자 서울지검 공안부 이용훈 부장검사 등 3명의 검사가 사표를 제출하며 반발했다. (…) 서울시 간첩 사건에서도 제대로 된 공안 검사가 있었으면 국정원의 불법조사를 걸러냈을 것이며, 재판과정에서 국정원이 증거조작에 나설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 박근혜 대통령이 원하는 것은 균형 감각이 아닌 것을 잘 알고 있다. 정권은 인사를 통해 공직사회를 길들인다. (…) 서울시 공무원 간첩 피의자 유우성씨를 기소했던 당시 이상호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장은 사건이 무죄가 났지만 주요 공안사건들을 지휘하는 서울중앙지검 2차장으로 승진했다. 꼭 인사가 아니더라도 집권자의 의중을 온몸의 세포로 감지하는 공직사회가 얼마나 뻔뻔하고 때로 무자비해질 수 있는지는 짧지 않은 기자생활에서 얻은 소득이라면 소득이다.”

-외눈박이 공안시대를 지나며(한국일보 ‘36.5°’ㆍ이진희 사회부 기자) ☞ 전문 보기

“전직 고위 검사들이 기함을 했다기에 ‘에스비에스’ 드라마 ‘펀치’를 뒤늦게 챙겨 보았다. 어색한 점이 많다. (…) 무엇보다 검사들이 조폭처럼 검찰총장을 향해 90도로 허리를 숙이는 장면에선 놀라지 않을 도리가 없다. 아! 사람들이 검찰을 이렇게 보고 있구나. 드라마에서 검사는 누구를 수사하고 풀어줄지, 무슨 죄목으로 기소할지 마음대로 정하고 조작까지 하는 무소불위의 권력자다. 검찰총장과 법무부 장관은 부정과 부패의 상징이고, 음모와 배신으로 얼룩진 권력다툼을 벌이면서 더 큰 권력에는 또 꼼짝없이 복속한다. 검사는 영달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저지르는 파렴치한 범죄자다. 꼭 20년 전인 1995년 2월 평균시청률 50.8%의 경이로운 기록으로 종영한 ‘에스비에스’ 드라마 ‘모래시계’의 강우석 검사는 전혀 달랐다. 온갖 압력에도 굴복하지 않고 어지러운 사회를 바로잡겠다며 정치권과 암흑가의 유착을 파헤친 정의로운 검사였다. 도덕적으로도 흠잡을 데 없는 인물로 그려졌다. ‘모래시계’는 ‘모래시계 검사’에서 비롯돼 ‘국민검사’를 낳았다. (…) 검사 팬클럽도 만들어졌다. 지금은 그런 일이 정말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아득하기만 하다. ‘펀치’ 역시 이 시대의 검찰상에서 비롯됐다고 봐야 한다. (…) ‘도덕성을 상실한 무소불위의 권력’, ‘권력다툼을 위해, 권력의 뜻에 맞춰 사건을 주무르는’ 모습도 지난 몇년간 자주 봐온 일들이기에 거부감 없이 생생하게 실감났을 것이다. (…) 심리학에선 타인의 긍정적인 기대에 부응하는 쪽으로 노력해 좋은 결과를 낸다는 ‘피그말리온 효과’와, 부정적으로 평가되면 자기도 모르게 그런 방향으로 행동하게 된다는 ‘낙인효과’가 있다. (…) 검찰도 낙인효과에 빠진 듯하다. 정치검찰이라는 이미지가 굳어지면서 이젠 검사들도 권력의 뜻에 따르는 것을 별스럽지 않게 여기게 된 것은 아닐까. (…) 청와대의 특정인이 쥐락펴락하기 편하게 검찰 인사가 마구 헤집어지는데도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여지는 것도 검찰 독립이니 개혁 따위는 까맣게 잊어버린 결과이겠다. 그러니 다음 모습은 뻔하다. 권력의 칼로서 지금보다 더 후안무치하게 설치는 정치검사들이다.”

-검사님의 캐릭터(2월 25일자 한겨레 ‘아침 햇발’ㆍ여현호 논설위원) ☞ 전문 보기

* ‘칼럼으로 한국 읽기’ 전편(全篇)은 한국일보닷컴 ‘이슈/기획’ 코너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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