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지음
북콤마 발행ㆍ652쪽ㆍ2만2,000원
“재판부의 판단을 존중한다.”
이보다 더 ‘다만’과 어울리는 문장이 또 있을까. 법원을 나서는 이들이 앵무새처럼 존중을 말하지만 진심은 대체로 그 뒤에 있다. 비상식적 판결에 대한 절규부터 정치공세로 재판부를 흔드는 경우까지, 여러 모습으로 판결에 따라붙는 물음들은 대한민국 사법부를 포위한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은 정말 죄가 없나. 이마트와 홈플러스는 대형마트가 아니면 무엇인가. 23년 만에 실현된 정의는 과연 정의라 할 수 있나.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의 ‘공평한가?’는 한국 법원을 성역의 유리성에서 끌어낸다. 2005~2014년 총 10년간 나온 66건의 판결을 심판대에 올렸다. 센터가 2005년부터 해온 판결비평이 바탕이 됐다. 교수, 변호사 등이 법리, 판례와 해외사례를 토대로 판결문을 해부하고 진단한다. 판결에 이르는 과정, 논리의 근거, 엎치락뒤치락한 1~3심의 흐름 등도 논의 대상이다.
‘이마트 등에 영업시간 제한을 둔 조례는 위법하다’는 판결을 비평한 조수진 변호사는 근거가 된 유통산업발전법을 토대로 판결의 비상식성을 들춘다. 지난해 12월 서울고법은 롯데쇼핑 이마트 등이 구청장 등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마트측 손을 들었다. 법이 대형마트를 ‘면적 3,000㎡ 이상으로 점원도움 없이 소매하는 점포집단’으로 보는데 이마트 등에 점원이 일하는 정육점이 있어 대형마트가 아니라는 것이다.
“판결 해석은 지나치게 도식적이고 문리 해석 범위를 벗어났다, 당초 법에 점원도움 유무가 들어간 것은 백화점과 대형마트를 구별하기 위해서였다. 이를 엄격히 해석할 일은 전혀 아니다. 대법원도 상가가 일부 있다고 주택 전체를 상가로 보지는 않는다. 이야말로 꼼수와 편법의 손을 들어주는 게 아닌가.”(조 변호사)
‘원세훈 선거개입 무죄’ 판결은 법치주의와 국민을 모독했다는 호된 질책 앞에 무너진다. 서보학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원세훈이) 선거개입을 지시한 많은 발언을 제쳐두고 개입을 하지 말라고 지시한 소위 알리바이성 발언을 지나치게 믿은 재판부의 맹목적 선의가 의심스럽다”고 지적한다.
‘김용판 선거개입 무죄’ 판결은 권은희 당시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의 진술이 다른 경찰들과 달라 믿을 수 없다고 했다가 난타를 당한다. “재판부는 불이익을 감수하고 의혹을 제기한 내부고발자 진술보다 공범자일 수 있는 경찰 17명의 진술에 무게를 뒀다. 법정에서는 늘 경찰 정보관이 재판을 기록했다고 한다. 허위 진술할 정황은 역력했다. 벼랑 끝으로 자유심증주의를 딸려 보낸 가장 형편없는 판결이다.”(이광철 변호사)
책은 또 인터넷의 오류까지도 그대로 베껴온 엉터리 판결문, 부하를 성추행해 자살에 이르게 한 소령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하며 ‘종교활동의 공유’를 선처 사유로 든 군 법원, 유서대필 사건 강기훈씨에게 꼬박 23년 만에야 무죄가 선고된 일 등을 다룬다.
사회 진전에 바탕이 됐다고 호평 받은 일명 ‘디딤돌 판결’도 있다. 고리 핵발전소 인근 주민의 갑상선 암에 대해 한국수력원자력의 책임을 인정한 판결, 외부 성기를 뺀 모든 요건을 갖춘 성전환 남성의 성별 정정 청구를 받아들인 결정, 내부고발자의 명예훼손에 무죄를 선고한 판결 등이다.
갈등의 태반은 법원으로 수렴된다. 정치 소통 화해 상생이 상실된 시대의 비루한 단면이다. 66건 판결비평의 바닥에는 ‘판사가 만능일 순 없지만 불능이어서도 안 된다’는 호소가 흐른다. 과연 공평한가? 누군가의 잘못을 따져 물어왔던 법원이 이제 국민의 심문 앞에 서 있다.
김혜영기자 shi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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